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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국장의 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07-04 03:04 조회4,400회 댓글2건

    본문

    <기사보기> 공감웹진 http://www.airforce.mil.kr:7778/news/afnews/afnews_3_1617.jsp 도깨비뉴스 http://www.dkbnews.com/bbs/zboard.php?id=headlinenews&no=7547 공군 인터넷 전우회 http://www.kafi.net/index.jsp청국장은 신비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이종선선배님은 제가 매달 보내드리는 청국장을 드시고 기적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래 기사에서 청국장의 위력을 보십시요!! 청국장!!! 정말 엄청납니다.뉴스레터에 실린 이종선 선배“대전역에서 유성으로 와서 혹독한 한 겨울 훈련을 받은 우리 148기 여러분. 누구보다도 전우들을 사랑했고, 동기생들의 우정을 이어오던 대전의 이종선군이 벌써 수년동안 혈액암이라는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의지가 약했더라면 벌써 생명의 끈을 놓았을 그지만 공군에서 닦은 정신력을 지금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전우를 생각하니 너무나도 마음이 아픕니다. 생명의 갈림길에서 사투하고 있는 이종선에게 마음을 모아 기도를 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2005년 5월 23일 공군 인터넷 전우회 ‘로카피스’ 자유게시판공군 인터넷 전우회인 로카피스의 게시판에 이종선씨의 사연이 올라온 것은 작년 5월. 1965년 1전투비행단에 병 148기로 입대해 69년에 전역한 공군 예비역 하사 이종선씨가 혈액암의 하나인 캐슬만씨병을 앓고 있으니 그의 쾌차를 기원해주자는 동기생 조동열씨의 게시글에서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06년 11월. 로카피스 회원에게서 편집팀에게 찾아온 한 편의 글에는 1년새 놀랄 말한 드라마가 그려져 있었다. “전우들의 힘이 한 생명을 살리고 있습니다. 14년 전부터 병명도 모르고 아무 희망 없이 투병생활로 외롭게 지내온 이종선님이 인터넷 전우회에 가입해 옛 전우를 찾은 지 1년. 40년간 연락이 끊겼던 옛 전우부터 생면부지의 선후배 예비역들까지 진심어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혈액암과 투병중인 예비역 이종선 △ “옛 전우들을 통해 새 생명을 얻었다”고 말하는 이종선 씨회원들 중에는 산삼을 보내오시기도 하고 1년이 넘도록 매달 청국장을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다시금 삶의 의지를 찾았고, 컴퓨터에 문외했던 이종선님은 불편한 몸에도 컴퓨터를 배우는 열의를 발휘하여 지금은 로카피스 방문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정도까지 기력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10월 29일 본인의 회갑잔치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몇 년간 거동도 못하던 이종선님이 혼자 걷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거기에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눈물을 흘리며 회갑연에 참석한 전우들과 함께 공군가를 2절까지 완창하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2007년 창립 7주년 행사에는 직접 걸어서 올 정도까지 기력을 회복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답니다. 감사합니다. 전우여러분. 한 전우의 생명을 살린 옛 전우들의 응원이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한 장 가득 빼곡히 담긴 이종선씨의 지난 1년은 글자 그대로 ‘드라마’와 같았다. 공감 웹진의 차주 아이템 회의에서 이종선씨의 사연을 커버스토리로 낙점하자는 말이 나왔다. 따뜻한 휴먼스토리가 어울리는 연말연시에 이만한 소재가 어디 있겠냐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병마와 투병중인 당사자와의 인터뷰는 조금 망설여졌다. 수소문 끝에 통화한 이종선씨의 목소리가 기대 밖으로 쾌청한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그가 머무는 대전 대덕구로 발걸음을 옮겼 다. “계십니까?” 문은 이미 열려있었지만 인기척이 없기에 돌아서는 순간, 초로한 인상의-그러나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이종선씨가 느린 걸음으로 방문을 열고 나왔다. 듬성한 흰 머리에 야윈 체구가 병색이 아직 남아있음을 느끼게 했지만 특별히 거동이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이구, 어서오세유”라는 진한 충청도 사투리가 너무나 어울리는 소박한 동네 어르신의 모습 그대로였다. “정말 전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유. 그저 오늘 내일 하다가 옛날 전우들 때문에 목숨 건진게 하두 고마워서 그 말 한마디 하고 싶을 뿐인디...” 까마득한 아들뻘 공군 후배에게 연신 ‘송구스럽다’고 하는 그에게 사진촬영은 부담이 된 모양. “후배들에게는 전우애를,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는 감사의 표현이 될 것”이라고 양해를 구한 다음에야 어렵게 촬영에 응하는 그는 천상 ‘충청도 순박남’이었다. △ 지난 10월 29일, 자신의 회갑연 사진을 보여주는 이종선 씨.40대 초반이던 혈액암 판정 당시 이종선씨는 의사로부터 “3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소견을 들었다. “본래 사업을 했었지유. 한때는 성공했다고 떵떵대며 살았슈. 1990년에 돌연 캐슬만씨병이라는 희귀병(혈액암)을 얻었는데 글쎄 의사가 3년을 못 넘긴다 하데유. 아직 창창한 40대니께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재산 다 털어 12년간 항암제 맞으며 버텨왔지유” 3년. 사망선고’와 다름없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이의 심정은 어떨까. 행여 안쓰러워하는 모습이 표정에 드러날까 시선을 떨구었지만 되려 그에게 티가 난 모양이다. “아이구, 지금은 괜찮아유. 3년 산다 했는데 10년 훌쩍 넘게 살았으니 이제는 점점 나아질 일만 남은 거쥬” 라며 말하는 그의 주름진 미소에는 분명 완쾌될 것이라는 희망이 묻어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병원에서 받아온 진단서는 각종 합병증과 함께 그가 아직도 중증 암환자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화제를 돌려 군시절을 회상해 달라 부탁했더니 돌연 사다리 내기를 아냐고 묻는 이종선씨. “왜 있잖아유. 사다리 그려서 먹을 거 사고 그러는 거. 저 군시절에 많이 했거든유. 근데 그거 좋아하는 동기놈들이 모여서 ‘사다리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 전우들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이 만나고 챙기고 그래유. 정말 목숨맨치 소중한 전우들이지유”△ (왼쪽)BX 관리병 시절. 가운데가 이종선 씨. 보직 덕택에 이씨는 부대원 모두와 친해질 수 있었다고.(오른쪽)휴가중 광주 사직공원으로 야유회를 나선 사다리회 동기들. 공군 약복을 입으면 괜시리 우쭐하던 시절.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종선씨그는 1전투비행단 매점의 관리병이었다. 식빵이며 크래커며 몰래 먹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부대의 모든 사람들과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는게 그렇게 행복했다고 한다. 몇 명 되지 않지만 사다리회가 조직된 이후로는 휴가 때 딸기밭으로 봉사활동도 가고 바다며 산이며 항상 뭉쳐 다녔단다. 공군인게 너무 자랑스러워 사다리회의 야유회 복장은 항상 군복이었다고. “유독 군생활이 길었던 탓인지. 그때 전우들은 지금도 못 잊어유. 특히 제 기수의 병들은 북한의 김신조 일당이 우리나라를 떠들썩 하게 하는 바람에 전역이 연기되어 41개월이나 복무했는데 그 때문에 제대는 하사계급장 달고 했답니다”△ (왼쪽)요즘에도 휴가나가 군복차림에 봉사활동하는 병사 있을까? 휴가중 농촌봉사에 나선 사다리회(오른쪽)사진병 병태에게 부탁한 조동열, 이종선씨의 ‘일병진급 기념사진’현재 40년을 넘게 이어오는 로카피스 사다리회는 동기인 조동열씨가 회장직을 맡고 있다. 조씨는 투병중인 이종선씨를 로카피스 인터넷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전국 각지의 공군 전우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구한 장본인. 이를 통해 해외 북미지부장인 강신정씨(부사관 85기)는 산삼을 보내오기도 하고 청국장 사업을 하는 여영훈씨(병 258기)는 완쾌할 때까지 매달 무상으로 청국장을 지원하기로 했단다. 생면부지의 후배들과 동기들에게서 응원과 격려가 담긴 댓글과 전화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 이씨의 회갑연에는 10여명의 로카피스 전우가 참석해 40년 전우애를 과시했다. “제 스스로 생각해도 기적이지유. 일어나지도 못했으니. 근데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공군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정성을 보내 주시니께 갑자기 각오가 생기더라구요. ‘살아야겠다. 그게 이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다’하고 말이쥬” 이종선씨는 올해 6월부터 조금씩 거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종교도 없고 희망도 없던 이씨에게 로카피스 회원들의 인터넷 댓글은 단순 댓글 이상이었다. 특히 가족이 모두 출가한 하루종일, 집안에서 혼자 외로움과 씨름하는 것은 또다른 병마와 다름 아니었다고.△ “기력을 회복해서 내년에는 반드시 걸어서 로카피스 모임에 나갈겁니다” “손녀딸이 도와줘서 이제는 어느정도 타자도 칠 줄 알아유. 인터넷도 들어가서 전우들이 남긴 댓글도 보고 답글도 올리고유. 외로움을 이기니까 마음의 병은 이미 완쾌한 지 오래지유” △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이라크전 사진. 다리에 총상을 입은 전우를 구하려던 2명의 전우도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정말 그래 보였다. 나이에 비해 성성한 백발을 가진 이종선씨는 오랜 투병 탓에 동년배보다는 연세가 들어보이기도 했지만 소박한 말투와 만면의 미소는 순박한 청년의 그것이었다. “이제 내 나이가 환갑을 넘었지만 전우들과는 40년전 그 마음 그대롭니다. 사람도 변하고 사랑도 변한다지유. 근데 전우애는 안 변합디다. 내 꿈이 뭔지 아셔유? 내년 7월 로카피스 모임에 내 발로 걸어서 가는 겁니다. 그러면 컴퓨터에서만 만나던 전우들 얼굴을 실제로 보게 될 거 아니에유?” 얼마전 인터넷에는 이라크전에서 전우를 구하려다 저격수의 총에 희생되는 사진이 누리꾼에 손에 퍼져나갔다. 우정이라 하기에도, 사랑이라 하기에도 부족해 보이는 그곳에는 전우애가 있었다. 국방의 의무를 두고서 갑론을박 말이 많은 요즘 세태에 특히나 병역의 의무를 두고서 현역 장병들이 느끼는 자괴감은 때로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어쩔 수 없이 군대왔다’는 그네들의 한숨은 한편 이해가 가지만 군에 와서 얻은 수많은 선물들, 특히 전장에서는 목숨을 바칠 정도로, 전역후에도 40년을 이어나가는 전우애라는 소중한 선물은 잊고 지내는 것 같아 또 한편 안타깝기도 하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훈련시절 눈 녹아 질척이는 연병장에 굴러가면서 이를 악물게 하던 격정적인 한마디. “전우야. 힘내라”는 산삼 100뿌리보다 영양가가 많았다. 미국의 전쟁드라마 ‘Band Of Brothers'에서 전우와 함께 산화하는 기가 막힌 시퀀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내무반에서 혹은 훈련장에서 느꼈던 질퍽한(?) 동기생의 땀내음처럼 전우애는 그렇게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 군문을 나선 이후에도 우리에게 소중한 힘의 원천이 되어주리라. ◆ 취재 : 공군본부 최세진 중위◆ 촬영 : 공군본부 이영원 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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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이종선손녀님의 댓글

    이종선손녀 작성일

    저 이거 우리 할아버지인데?? 이거 어디서 구하셨어요??
    할아버지댁에 있는 사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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