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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아웃사이더 3부 -<중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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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9-12-02 12:16 조회4,577회 댓글1건

    첨부파일

    본문


    1.
    "띠리리리..."
    아직 이른 아침 손전화기가 머리맡에서 알람처럼 울렸다.
    미처 잠이 덜 깬 채로 전화기를 찾아 들고 발신인부터 확인하니
    수 년간 소식이 끊어졌던 구태오다.
    "구사장?"
    "아. 형님, 잘 지내십니까? 제가 지금 대구서 서울 올라가는 길인데 형님 생각이 나서 전화 드렸습니다"
    두레마을이라는 식품회사를 운영하다가 한 2,3년 소식이 끊어졌던 친구가 느닷없이 나타나 영후에게 소식을 전해 온 것이다.
    "그동안 어디 있었나? 죽은 줄 알았네"
    "예, 머리 좀 식히느라 중국 흑룡강성쪽에 가서 처박혀 있었습니다"
    "중국에? 그래, 건강은 괜찮은가?"
    "예,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올라가는 길에 의논할 일이 좀 있어 형님 좀 만나고 갈려고 합니다. 지금 계신 곳이 어딥니까?"
    몇 년만에 불쑥 나타나서 의논할 일이 있다니 영후는 내심 궁금해 져서 곤지암으로 오라고 거처를 알려주었다.
    서너시간 쯤 후에 아파트 아래 구사장이 도착했다.

    "점심시간도 돼가니 곤지암에서 유명한 소머리국밥집에서 소머리 국밥이나 먹으면서 얘기하자"
    영후는 시동을 걸면서 구태호에게 뒤따라 오라고 손짓을 하며 앞장섰다.
    아직 점심시간이 이른 시간임에도 곤지암 '진짜 소머리국밥'집에는 손님들로 북적댔다.
    서빙하는 미스남이 영후를 보더니 사모님은 같이 안오셨냐며 반가운 내색을 한다.
    "응, 오늘은 손님하고 같이 왔어. 여기 국밥 특으로 두개"
    " 네, 아,참 사장님이 낫도 주문하라고 하셨는데 이따 저녁때 갖다 주실 수 있죠?"
    미스남이 영후에게 국밥집 사장님 낫도주문을 한다.
    "응, 저녁때 갖다 줄께"

    "형님 요즘 낫도 잘 되십니까?"
    구사장이 먼저 낫도얘기를 묻는다.
    "어, 내리막이야, 부천서 어떤 미친 의사가 심장병환자들이 청국장을 많이 먹으면 콩속의 비타민 k 때문에 피가 굳는다는둥,약빨이 안받는다는둥, 방송에다 해대는 통에 주문이 뚝 떨어졌어, 요즘 계속 내리 적자야, 문 닫아야지 못해 먹겠어。그 미친 의사자식이 내용이 잘못 와전되었다고 정정사과방송을 했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소용없어 "
    영후가 볼멘 소리를 하자 "그래요? 낫도는 일본서 수백년동안 부작용 하나 없는 최고 건강식품인데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한답니까? 미국에서도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되었는데 말입니다."
    구사장이 영후를 쳐다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게, 콩속의 비타민 K 때문에 영향을 받는다면 두부나 콩나물도 많이 먹으면 해롭다는 말 아닌가? 비타민 K 의 영향이 하나라면 피를 맑게하는 혈전용해효소의 영향이 그보다 열배 스무배 더 효과가 있는데, 발효가 안되어 혈전용해효소가 없는 재래식 청국장을 보고 그런 소릴해대니 틀렸다고 할 수도 없고, 참 나, 그냥 환장할 노릇이야.
    의사새끼가 청국장에 대해서 뭘 알겠어? 발효가 잘된 청국장인지 발효가 안된 청국장인지 대학교 식품과 교수도 구별조차 잘 못하는데 말이야,
    그렇더라도 차라리 학계에다 논문으로 먼저 발표를 했다면 억울하지나 않겠어, 개나 소나 지잘났다고 기자들 불러서 방송부터 터트려대니 미치겠어, 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우리 조상들의 발효식품인 청국장이 세계화가 될 수가 있겠나? 나 참 기가차서..."
    영후가 혀를 끌끌 차며 어이없어 하자 "거 참...형님! 한국서 너무 열받지 말고 나하고 중국이나 갑시다"
    구사장이 농담처럼 영후를 꼬드겼다.

    "중국에?"
    갑자기 뚱단지 같은 소리에 영후가 태오를 쳐다보며 되묻자 구태오가 식탁앞으로 바짝 다가 앉으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서두를 꺼냈다.
    "사실 형님 만나러 온 것도 그 때문입니다. 지금 중국시장이 커지고 있는데 일본 낫도가 제법 잘 나가고 있어요.
    형님 기술이면 현지에 공장 만들어 중국 전역에 한번 해볼만 하다 생각해요.
    올해 북한평양에도 한국의 전라남도에서 지원해서 발효콩 공장을 준공해서 북한 인민들에게 건강식품인 생청국장을 보급하고 있는 추센데 형님은 중국서 한번 사업을 벌려보는게 어떻겠습니까?"
    구사장이 입에 침을 튀기며 중국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영후를 자극했다.

    " 자네 말은 그럴듯 하지만 중국사업이 만만치 않을텐데 무슨 방도가 있나?
    언어도 안통하고... 사업자금도 적지 않게 들테고..."
    영후가 난색을 표하자 구사장이 빙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형님 제가 중국통 아닙니까? 중국연변쪽에도 두레마을 메주공장이 있고 한쪽에다가 설비만 하면 낫도공장하나 만드는거 별 어려울 거 없습니다. 금방입니다"
    그러고 보니 구사장이 중국쪽에 밝은 건 영후도 이미 아는 사실이다.
    "적어도 수억은 가져야 시작해 볼 엄두가 날텐데 말이야...
    영후가 계속 난감한 얼굴로 구사장을 쳐다보자 손사래를 치며 "아이고 형님, 누가 사업을 돈으로만 합니까? 형님 혼자 다 투자하시라는게 아닙니다. 북경 체육대학교에 나하고 꽌시관계인 전0린교수가 같이 동참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전교수가 마당발이라서 중국서 사업하는데 엄청 도움이 될겁니다. 형님은 생산을 맡고 나하고 전교수는 마케팅 맡을테니 한번 해보십시다 형님!"

    '까찟거! 중국십수억 인구에 당뇨병,고혈압환자만 수억이 넘는다는데 중국시장을 한번 휩쓸어봐? 구태오의 설득에 영후도 내심 흥미가 동했다.
    아침을 거른터라 소머리국밥 한그릇씩을 후딱 비우고는 보름후 중국북경으로 전교수를 만나 현지 답사하기로 약속하고 영후는 구사장과 헤어졌다.

    福如海
    http://blog.naver.com/natto114


    2.
    "어서오시오. 먼길에 오시느라 고생하셨소"
    북경공항에서 40여분을 달려 전교수의 연구실에 도착하자 전교수는 한국어로 영후에게 인사를 건네며 손을 내밀었다.
    전교수의 유창한 한국말에 영후는 깜짝 놀라 전교수가 내미는 손을 잡은 채 놓을 줄을 몰랐다.
    "내가 한국에서 88올림픽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사람이오. 한국말 배운지는 20년정도 되었지. 허허허"
    아직 50후반으로 보이는 전교수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의자를 권했다.
    "놀랍습니다. 전교수님, 오히려 중국에 문외한인 제가 부끄럽습니다"
    멀지도 않은 이웃인 중국, 수교한지도 벌써 20년이 넘어가는데 아직 중국이라면 공산주의 국가, 적성국가로의 이미지가 강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고만 여기는 중국.
    그 중국의 수도 북경에서 중국의 후학들을 가르치는 한족교수의 유창한 한국말 실력에 영후는 감탄과 함께 주눅이 들었다.
    "어디 가서 저녁식사를 해야지?"
    전교수가 구사장에게 나가자는 손짓을 했다.
    잠시 후 전교수는 북경의 어느 오리구이집으로 일행을 안내했는데 입구에서부터 번호표를 받아 대기중인 손님들을 보고 영후는 또 한번 입이 떡 벌어졌다.
    '우와! 세상에...이렇게 줄을 설 정도로 많이 외식을 하러 다닌단 말인가?'
    영후에게 중국은 그저 발전이 느린 후진국의 모형으로만 각인되어져 있는 터였다.
    십수억의 엄청난 인구에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
    더구나 공산당 일당독재로 인민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지 않은 군사독재의 나라.
    영후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단면들이 일거에 씻겨나가는 광경이었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영후의 눈이 다시 한번 휘둥그레졌다.
    "북경의 베이징 덕이 유명하다더니 진짜 대단하구먼" 영후의 감탄에
    "형님, 여기는 북경에서 작은 식당에 속합니다. 북경시내 큰 식당에 가보시면 규모나 음식종류에 놀라실 겁니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며 태오가 바싹하게 구운 오리껍질을 영후의 접시에 올려주며 웃었다.
    중국 음식문화가 다양하고 화려한 줄이야 알지만 실제로 중국식당에서의 느낌은 상상이상으로 영후를 놀라게 했다.

    "형님! 중국은 상류층만 5천만명이 넘는답니다. 고급외제차 두세대씩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고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호화생활을 한답니다. 워낙 인구도 많고 빈부격차도 심한 나라여서 중국은 그게 가장 큰 문제랍니다 "
    구사장이 영후에게 중국이 발전하고는 있지만 관리들의 부정이 심해 속이 썩어 있는 나라라고 한마디하자 전교수가 심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이며 동의했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뾰족한 방도가 없으니 학생들에게 미안한 점이 많다오. 그저 외국의 좋은 점만 가르칠 수 밖에"
    영후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듯이 식사하는 내내 전교수는 중국이 안고 있는 정치,경제,문화에 관련한 여러방면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해 주었다.
    "전교수님께서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세세하게 설명해주시니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음식문화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영후는 내친김에 왜 중국은 일본의 낫도를 받아 들이고 있는지에 관해 물었다.
    "사실 중국은 콩이 너무 흔하고 콩으로 만든 제품이 너무 많아서 콩을 발효시키는 방법에 대해서는 별다르게 여기지 않고 있지요. 병자호란당시 청나라 기병들의 비상식량으로 삶은 콩을 말 안장아래 차고 다니다가 자연발효한 것이 한국의 청국장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처럼 완전하게 발효시키지 못한 채 찌개로 끓여서 먹는 걸로 압니다"하며 한국의 청국장처럼 일본의 낫도에 관해서도 별다른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영후는 심사가 편치 못해졌다.
    낫도는 일본의 고승이 대흥사라는 절에서 콩을 발효시켜서 승려들이 먹게 된 것이 일본낫도의 유래이다.
    그후 학자들이 연구를 계속해서 현재와 같이 완전하게 발효시켜 먹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낫도를 자기네들의 전통 건강식품 1호라고 자랑하며 전국민의 90%가 먹고 있으니 일본에서의 낫도의 위상은 다른 건강식품과는 비교조차 할 수가 없다.
    이제 일본의 낫도는 일본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 5대 건강식품에 선정되어 세계로 진출하고 있으니 일본인들의 영리함이 부럽기조차하다.
    갑자기 영후는 투지가 솟아 올라옴을 느꼈다.
    한국은 청국장하나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돈벌이에만 급급하여 조악한 제품을 양산하는 통에 부천의 심장병전문의사가 황당한 방송을 하질 않나, 교수는 교수대로 서로 갑론을박하며 서로 잘났다고 떠들지를 않나... 영후는 차라리 콩의 원조인 중국에서 제대로 한번 일본의 낫도를 꺽어보고 싶다는 결의가 솟아올랐다.
    전교수는 구사장을 가리키며 "그래서 저 친구가 중국에서 낫도를 생산보급하자고 나를 다그치고 있다오. 허허허" 하며 호방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3.
    전교수와 저녁식사후 헤어진 영후는 구사장이 미리 예약해둔 왕징의 어느 민박아파트에 도착했다.
    북경시 외곽의 조양구내 한블록을 현지인들은 왕징(望京)이라고 한다.
    한때 한국인들만 10만명 정도 거주한 때도 있었지만 북경 올림픽이후 정부의 통제로 이제는 5만명 정도로 한국인 거주 인구가 줄었다.
    조선족동포들과 한족과 한국인들이 서로 뒤섞여 한도시를 이루어 지내는 곳이 바로 왕징이다.
    길거리 곳곳에는 한국어 간판이 중국어와 함께 나란히 걸려 있고 길거리 어디에서나 한국어로 얘기하는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라 영후는 중국에 온 실감보다 한국의 작은 소도시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태오! 오늘은 북경에 있는 '북경낫도'공장을 둘러보자."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각에 잠이 깬 영후는 태오와 함께 북경 현지의 낫도공장 시설이 궁금해서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태오를 재촉하여 북경낫도공장으로 향했다.
    북경외곽에 자리잡고 있는 북경낫도공장은 그 규모면에서 영후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북경맥주집단에서 한국돈으로 15억원을 출연한 북경낫도는 북경맥주공장 맞은 편 수천평의 대지위에 지어진 5동의 건물 중에 가운데 한 동의 건물을 공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G M P 시설을 완비한 공장내부에는 최신 전자동 일본식 낫도설비와 동결건조설비까지 갖춰 그야말로 완벽한 시설을 자랑하고 있었다.

    공장을 방문하기 전에 태오가 미리 사전 방문예약을 하였으므로
    영후는 공장 2층 상담실로 안내되어 어렵지않게 '왕이동' 북경낫도 동사장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공급 받을 수 있는 가격을 알려 달라고 하게" 영후는 태오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태오가 중국어로 왕사장에게 공급가격을 묻자 왕사장은 중국사람답게 느긋한 표정으로 '구매하는 수량에 따라서 가격조정을 하게 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일단 공급해 줄 의사가 있는 것을 확인한 영후는 북경에서 우선 시장조사를 해 본 후 다음 수순을 진행하기로 하고 태오에게 한가지 주문을 더 했다.
    "우리는 '북경낫도'라는 상표로 북경에서 마케팅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우리 상표를 사용하고 싶다. 가능하겠는가? 라고 물어보게"
    태오의 통역질문에 즉각 왕사장의 '불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형님, 자기들이 생산판매하는 제품은 '북경낫도'이므로 그 상품을 그대로 구매해서 판매하는 것을 원한답니다"

    영후의 완강한 표정을 왕사장은 불쾌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태오의 말을 전해 듣고는 얼굴색이 조금 붉어졌다.
    "형님, 이 문제는 그룹의 부회장과 상의한 후에 통보를 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구먼" 영후는 내심 짜릿한 흥분을 느끼며 일단 태오와 왕징(望京)으로 돌아왔다.

    시장조사와 저녁식사겸 들른 왕징번화가에 자리잡은 '화롄'백화점은 쇼핑나온 사람들로 넘쳐났다.
    특히 북경식 '샤브샤브'식당코너에는 번호표를 받고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길게 줄이 이어져 있었다.
    태오도 얼른 번호표 한장을 받아 들고는 영후에게 한 삼십분쯤 기다려야 되니 그동안 지하슈퍼나 돌아보고 옵시다'며 지하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로 앞장섰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백화점은 비슷하구나하고 느끼며 지하 식품매장을 돌아보던 영후의 눈에 매장 한쪽 낫도코너에 진열되어 있는 '북경낫도'가 눈에 띠었다.
    타지역에서 생산된 일본낫도와 함께 진열된 '북경낫도'는 한국에서의 가격과 거의 같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콩이 흔하고 가격이 싼 중국에서 이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것은 소비자에 대한 기만이나 같아" 영후는 태오에게 중국의 상술에 대해 곱지 않은 평을 했다.
    "형님, 중국 중산층의 소비수준은 이미 한국 중산층의 소비수준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높아져서 '북경낫도'의 월별 판매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답니다"
    태오는 좋은 제품을 비싼 가격에 파는 전략은 고급소비자들의 소비만족을 위해서 나쁘지만은 않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4.
    아직 겨울이라기에는 이른 11월의 북경에 진눈깨비가 날린다.
    길 거리에 사람들이 외투깃을 올리고 바삐 걸어 다닌다.
    한국의 기온보다 차게 느껴지는 차가운 기온이 북경임을 실감케 한다.
    어제 '북경낫도'로 부터 연락이 와서 영후가 원하는 대로 우리자체 상표로 공급해 주겠다는 통보와 몇번의 밀고 당기는 설전끝에 월 구입수량을 1,000만원 단위로 해서 구매단가를 거의 공장도 원가로 맞추어 놓고는
    영후는 태오와 함께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기다리는 중이다.
    문제는 중국에서 새로운 상표로 제품을 출시하려면 당국에 그 상품에 대한 질량신고와 검사를 다시 해야한다는 점과
    새 상표를 디자인한 포장지와 박스를 '북경낫도'측에 제공해 주어야 하는 점이 부담이 되었다.
    두가지 모두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출발시각이 되어 비행기좌석을 찾아 앉은 후에도 영후의 머리속에는
    전체 사업비용에 대한 계산이 떠나질 않았다.
    비행기 유리창너머로 바깥을 응시하던 태오가 영후의 속을 대충 알아채고는
    "중국이 정말 매력 있지요"하며 말을 건넸다.
    "그나저나 집사람이 반대나 않을 지 모르겠다. 경기도 좋지 않아 적자 나는 판에 또 중국에다 돈 갖다 버린다고 난리칠 거 같아"
    사실 집사람이 반대한다면 이번 일은 쉽게 시작하지 못할 것이다.
    이번 중국행은 그냥 현지 시장조사차 다녀 온다고 구슬리고 왔지만 막상 중국 현장에 와서 느낀 상황은 낫도의 시장규모나 언어와 문화의 장벽들로 해서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다는 점이 영후의 의지를 한풀 꺽어 놓은 것이다.
    모든 사업이 그렇듯이 일단은 자금력이 받쳐주어야 하고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
    영후는 중국시장이 크고 매력이 있는 반면에 그만큼 위험부담도 크다는 점을 피부로 실감하며 좌석을 뒤로 젖힌 채 눈을 감았다.

    영후의 예상대로 아내는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다.
    "여보, 중국가면 다 망해서 나온대, 여기서 차근차근 해나가는게 더 좋을 것 같아"
    아내는 큰 자본도 없이 의욕만으로 덤비는 영후가 무모해 보여 말리려 애썼다.
    그러나 영후에게는 오십초반의 나이에 더이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전장에 나가는 전사처럼 비장한 결의를 갖게 했다.
    "일단은 '북경낫도'에 OEM 방식으로 시장을 타진한 후에 공장을 차리는 방향으로 할 생각이야"
    영후의 고집이 워낙 완강함을 알고는 아내도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만만디!
    먼지가 쌓여 태산을 이루듯
    천천히 천천히 서두르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끝없는 만리장성을 쌓은 만만디의 나라.

    "만만치 않을 거야, 가면 다 망해서 나온다더라.
    그런데다 왜 돈을 처넣는거야?"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따려 한 돈키호테

    돈키호테는 무엇을 위해 달려갔는가?
    드넓은 대륙의 한가운데서 창을 꼬나 든 나는
    부활한 돈키호테.

    '누구나 한번쯤은 넘어질 수 있어
    이제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
    내가 가야하는 이 길에 지쳐 쓰러지는 날까지
    일어나 한번 더 부딪쳐 보는거야

    마이웨이~~~'


    5.
    한 해가 저문다.
    세월이 빗살처럼 빠르다.
    길거리에는 캐롤송이 울리고 사람들은 축제를 기대하는 즐거운 표정들이다.
    구태오사장과 다시 북경에 온지 보름이 지났다.
    왕징에 있는 오피스텔을 임대하고 식품판매회사 영업등기를 마치느라 꽤나 시간이 걸렸다.
    '북경낫도'측에는 새상품의 품목신고와 질량검사를 의뢰하고 디자인 전문업체를 소개받아서 상표디자인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오피스텔 창밖으로 눈발이 날린다.
    " 눈 옵니다" 태오가 어린아이들처럼 큰소리로 영후를 보고 즐거워한다.
    북경에서 처음 보는 눈이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내리는 눈은 똑같구나'
    언어소통이 안되어 단절감을 느끼고 있는 영후는 똑같은 흰색으로 펑펑내리는 눈발이 친근감을 갖게 해주어 기분이 푸근해졌다.

    "오늘 성탄전야니까 북경서 제일 큰 성당으로 미사하러 가자"
    인터넷으로 북경에서 제일 큰 성당을 찾아 위치를 확인한 영후는 태오와 성탄자정미사를 가기로 작정하고 저녁식사후 조금 이르다 싶은 7시쯤 느긋하게 츨발했다.
    천안문 근처에 있는 '성모무염시태'성당은 고색찬연한 입구의 대리석문양과 함께 규모면에서 영후를 놀라게 했다.
    종교활동을 통제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저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큰 규모의 성당이 있다는게 영후에겐 신기한 일이었다.
    오후 늦게부터 내리는 눈발이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는 북경의 성탄전야는 말 그대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성탄의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어 있었다.
    9시가 되기도 전에 도착한 영후는 성당 입구에서부터 천안문 근처까지 도로로 길게 늘어선 미사참례를 하러 온 신자들의 긴 행렬을 보고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도 이젠 정말 많이 개방되었구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국가라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더라도 살만하지 않은가 영후는 내심 중국의 변화된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동력이 필요했다.
    영후는 국제운전면허가 허용되지 않아 중국의 교통관리공단에서 실시하는 운전면허증 시험을 치렀는데 2번의 불합격 후에 도전한 세번째의 합격은 영후에게 중국을 활보할 수 있는 유일한 날개가 되어주었다.
    그동안 한중합작으로 생산한 현대의 '웨이뚱'을 한대 뽑아서 태오가 운전해 다니도록했는데 이젠 영후도 중국운전면허를 획득했으니 자유롭게 운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북경의 복잡하고 미로같은 도로도 네이게이션을 달고 다니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어서 영후는 오랫만에 팽팽하던 긴장감을 풀고 마음이 자유스러워졌다.

    그동안 공들이던 홈페이지가 완성되었다.
    산뜻한 디자인의 새상품과 함께 몇번의 수정끝에 완성된 홈페이지는 그야말로 중국에 진출하는 신호탄과 같았다.
    영후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이제는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된 시대다.
    아니나 다를까 홈페이지를 개통한지 한달정도 지났을 무렵 사무실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태오가 중국어로 한참을 통화한 후에 조금 상기된 얼굴로 "형님! 중국 농업과학원에서 우리회사 대표와 만나고 싶답니다."하며 영후의 손을 덥썩 잡았다.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하는데?" 영후도 뜻밖의 일에 조금 흥분된 마음으로 태오에게 되묻자
    "8월달에 전세계 100여개국이 참가하는 <세계 대두 연구대회>가 있답니다. 5년만에 한번씩 열리는 <세계 대두 올림픽>인데 이번에 8회 대회를 35년만에 중국에서 주최하고 북경에서 연답니다. 그 대회에 우리회사 제품이 '대회의 꽃'이라며 우리를 대회에 초청하겠답니다"
    태오는 형님의 사업안목이 신통방통하다며 연신 영후의 손을 흔들었다.

    "나는 형님이 생산공장부터 만들 생각은 않고 OEM해서 시장에 제품부터 깔아보자 할 때 사실 조금 불만이었습니다.
    전교수와 합작으로 북경체육대학교내 시설을 빌려주기로 했는데 형님이 설비보다 먼저 시장타진부터 하자고 하니 좀 갑갑했습니다"
    태오가 영후에게 지난 동안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무리 콩발효식품의 효능이 좋다고 해도 여기는 일본이나 한국처럼 대중화가 되려면 아직 요원해. 그때까지 본격적인 시설투자는 금물이야".
    영후는 중국시장은 장기적인 전략이 중요하다고 태오에게 일러 주었다.

    6.
    "타이빵!"
    백화점 구매담당은 영후에게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입점 상담할 때 담당자의 호의로 영후의 새제품은 그리 어렵지 않게 북경시내의 몇군데 백화점에 입점할 수 있게 되었지만
    3,4개월 동안의 판매상황은 예상대로 저조했다.

    시장은 냉정하다. 서두른다고 판매가 늘어나지 않는다.
    특히 중국은 사람사이의 관계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나라이므로 맥을 짚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다행스러운건 8월달의 세계대두연구대회의 초청회사로 참가하게 된 것이다.
    '급하게 서두를 필요없어, 천천히 한 걸음씩 가는 거다'
    태오가 답답해 할수록 영후는 느긋해지기로 마음먹었다.

    하루하루 기다리던 날이 훌쩍 지나고 드디어 8월13일 <세계대두올림픽>의 막이 올랐다.
    미리 준비해둔 현수막과 플래카드를 설치하고 제품진열을 마친 부스에 관람객들이 몰려들었다.
    진이 죽죽 늘어나는 콩발효식품이 신기한 듯 조금씩 시식을 하며 사진을 찍기도 하며 질문을 하기도 했다.
    사흘간의 기간동안 중국내 식품회사의 대표와 말레이시아, 싱가폴등 동남아시아에 삼십년간 식품을 수출하는 업체의 대표가 제품구매에 대해 영후와 상담을 벌이고 공급가격에 대해 합의를 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문제는 중국내에 생산공장을 만들어 값싼 중국콩으로 제조 공급해야 공급가격을 맞출 수 있다는 점이었다.

    "형님, 성과가 좋아 다행입니다" 태오가 웃는 얼굴로 영후의 어깨를 덥썩 안았다.
    '하하, 명색이 세계 100여개국이 참가한 대두올림픽인데 이 정도 성과야 약과지. 사실 나는 좀 더 기대가 컸었어"
    영후는 중국내 정부고위관리와 연결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고위간부는 아니더라도 북경농업대학교의 '이이특' 대두 전문 노박사가 북경서 한시간 거리의 하북의 농업대학교총장이 제자라면서
    그 대학교 내에 생산설비를 갖출 수 있도록 주선해 주겠다고 약속한 일도 사실 적지 않은 성과였다.
    '어쨌던 한국으로 가서 다시 작전을 짜보자"
    거래처를 두군데 확보하였으므로 중국내에 생산설비를 하여 공급을 개시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내수시장을 겨냥하여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타이밍을 맟춰 진출할 것인지 한국에 돌아가서 신중하게 전략을 짜야했다.

    < 제 8 회 세계 대두연구 대회 >
    {FILE:13}

    한국에 돌아와 국내시장을 총공략하기 위해 00대학교내에 생산설비를 보강하느라 분주한 11월 중순의 어느날,
    중국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대학낫도 사장님입니까?"
    "예, 뉘신지요?"
    전화기속의 한국목소리는 지금 중국에서 전화를 하는데 중국사무실이 연락이 안되어 한국으로 전화를 한다며 낫도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미국 뉴욕에서 중국시장을 둘러보다가 홈페이지를 보고 전화를 했다고 설명했다.
    "지금 한국에 있는데 어쩌지요?" 영후는 미안한 마음으로 한국에 방문해 줄 수 있는지 되물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일단 미국본사로 돌아갔다가 이달 말쯤 한국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시죠, 그럼 미국본사 연락처를 남겨주시겠습니까?"
    "예" 그는 핸드폰 번호와 미국내 070 인터넷 전화번호를 남기고 이달 말경에 찾아 가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을 남기고는 전화를 끊었다.
    우연찮게 걸려온 전화라 영후는 별로 대수롭잖게 생각하며 다시 생산설비보강에 열중하였다.

    국내내수시장은 2년전 부천의 심장병전문의사의 청국장과다복용 위해론 방송이후 지리멸렬한 상태였으므로 다시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생산준비에 분주하던 어느 날 오전 10시 경에 영후의 손전화기가 울렸다.
    전화를 받자마자 보름여 전에 중국서 전화한 목소리가 영후의 손전화기속에서 지금 서울에 도착했다며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느냐고 묻고 있었다.
    " 아, 지금 제가 아산시에 있는 호서대학교에 있습니다. 서울역에서 고속철을 타고오시면 제가 마중을 나가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잠시 후 그 사람이 오전 11시30분 도착이라며 도착시각을 알려왔다.
    도착시각전에 미리 천안역 광장에 주차해 기다리고 있던 영후의 시야에 50대 중반의 점잖은 차림의 남자가 들어왔다.
    얼핏보아도 인상이 좋은 중년의 중후한 사업가의 품위가 엿보였다.
    "많이 기다렸습니까?" 그사람이 인사차 한마디하며 영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닙니다. 거의 제시각에 도착하셨습니다" 영후도 반갑게 손을 맞잡았다.
    선자리에서 인사차 서로 명함을 건넸다.

    < Champro Group 회장 0 0 0 >
    명함을 받아든 영후가 조금 놀라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꼭 한번 여사장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지요 하하"하며 미소띤 얼굴로 영후의 차에 올랐다.
    "저는 미국내 36개주의 대형마켓과 그로셔리 스토어에 식품을 납품하고 있지요.
    내년부터는 낫도를 그룹의 주력사업으로 선택해서 마케팅을 할 계획입니다.
    이미 시장조사도 다 해두었습니다. 내년 목표를 500만불로 잡고 2015년까지 1억불 판매목표를 달성할 계획입니다"
    그의 천문학적인 판매계획에 영후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되물었다.
    "그런 큰 사업에 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일본의 대형낫도 회사도 얼마든지 많은데 말입니다"
    "하하, 매일이다시피 올리는 여 사장님의 글을 읽고 이런 분이라면 제 사업파트너로 틀림없겠구나하는 확신이 들었지요. 저는 사람보는 눈이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답니다 하하하"
    영후에게 행운이 찾아 온 것일까?
    미국에서 20여 년간 미국내 36개 주의 대형마켓과 식료품상점에 식품을 공급하는 식품회사그룹의 오너가 직접 한국에 있는 영후를 찾아온 것이다.

    "그동안 팔지 못해 애를 먹던 여러 업체의 식품들을 제가 수없이 처분해 주었지요. 제가 미국에서 팔지 못하는 상품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하하
    미국도 이젠 경기가 좋지 않아져서 그동안 취급하던 품목을 많이 정리하고 신년부터는 '낫도'에 주력해서 마케팅하는 것으로 목표를 세웠습니다.
    여사장님과 같이 윈윈해 보고 싶군요"
    0회장의 자신만만한 어조에 영후는 이게 무슨 횡재인지, 갑자기 이런 행운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와도 되는건지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영후에게 더 중요한 것은 공급가격이었다.
    중국에서도 구매를 원하는 업체와 상담시에 한국에서 생산공급하는 단가와 중국현지에서 생산공급하는 단가차이가 거의 두배 이상이나 나서 일단 보류해 두지 않았던가, 공급가격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던가?
    영후의 우려에 0회장의 답변은 오히려 시원시원했다.
    "물론 공급가격도 중요하지만 제조공급업체의 품질이 제일 중요합니다.
    크레임이 발생하면 그동안의 신용도가 무너져서 계약이 해지되어 납품이 중단되기 때문에 제조공급업체 선정이 정말 중요하답니다.
    큰 마켓하나에 입점하기 위해 2년씩 심사대기중인 업체도 부지기 수이지요."
    0회장의 말대로라면 제품의 품질면에서는 크게 염려할 것은 없었으므로 공급가격만 합의가 된다면 한번 올인해 볼만한 일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스쳐갔다.
    "그래도 우선 미국내 판매예상가격과 공급받고자 하시는 가격을 알려주시겠습니까?"
    영후가 0회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자
    "서로 협의해서 앞으로 적정선을 만들어 봅시다. 서로 신뢰속에서 의논해가면 해결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0회장이 느긋하게 영후를 가라앉혔다.
    사실 공급가격은 단번에 결정할 사안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조급하게 질문한 것같아 민망스럽습니다.
    제품 포장이나 디자인, 중량등 의논할 사안이 많습니다. 우선 샘플부터 검토해 보시지요"
    "제품의 품질은 여사장님께 일임하기로 하겠습니다. 나머지는 하나씩 풀어나가도록 하고 1월 초순에 한국에 다시 올테니 그때 계약서를 작성토록 합시다"
    생산공장을 한바퀴 둘러 본 0회장을 00역에 배웅하고 돌아오는 영후의 가슴속에 또 한번 열정이 솟구쳐 올랐다.
    미국 36개주면 한국의 3,40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시장이다.
    이런 엄청난 시장을 가지고 있는 식품회사 그룹의 오너가 영후에게 같이 윈윈하자고 약속하고 돌아간 것이다.

    성탄전야에 눈발이 날린다.
    지난해 북경에서 보냈던 성탄절도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는데 한국에서 맞는 성탄도 하얀 눈을 볼 수 있게 되어 영후는 아이들 처럼 기분이 들떴다.
    충청도에 내려와 있는 탓에 아내와 함께 곤지암 본당에서 미사참례를 하지 못하는게 아쉬웠지만 조그만 면소재지 성당에서 드리는 조용한 성탄미사도 명동성당에서의 화려한 미사 못지않게 잔잔한 기쁨이었다.
    차가운 땅위로 내리는 흰눈처럼 지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하나님 아들이 탄생하신 고요하고 거룩한 밤.
    가장 높고 거룩하신 분이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신비에 영후는 깊히 머리를 숙였다.

    7.
    다가오는 새해는 60년만에 돌아오는 백호해다.
    영후는 지난해 북경에 있을 때 중국의 동물원에서 보았던 하얀 호랑이가 떠올랐다.
    시베리아 벌판을 주름잡던 백호의 기상을 좁은 우리안에서도 잃지 않고
    얼룩무늬 호랑이와는 또다른 신비한 매력을 발산하던 백호.
    새해에는 백호의 등에 올라탄 것 같이 모든 일이 일기당천하리라는 예감이 스쳐갔다.
    아마도 영후처럼 가장 낮고 보잘 것 없는 자를 가장 높히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계시리라.

    신년벽두에 폭설이 쏟아졌다.
    100년만의 폭설이다.
    충청 이북지역은 밤새내린 폭설로 도로가 정체되어 서울과 수도권은 교통대란이다.
    새해 첫주에 0회장의 한국방문 일정이 잡혀서
    오전 일찍 영후는 어제 밤 비행기로 도착한 0회장을 만나러 영등포로 가는 길이다.
    자동차로 가는 걸 포기하고 새마을 기차표를 끊어 열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에
    흰눈송이들이 흩날린다.
    동천에 얼어있던 그리움들이 서러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낙하하는 눈시린 하얀눈송이들의 몸짓.
    영후는 한껏 감상적이 되었다.

    20여분이나 연착한 새마을 열차가 평택부근에서 또 정차했다.
    폭설로 인한 신호체계가 고장나 복구중이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꽤 지루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열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 한시간이나 연착한 영후를 0회장이 영등포역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영후를 보자 반갑게 손을 들어보였다.
    "많이 늦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영후의 인사에 "천재지변이니 어쩌겠습니까? 더 늦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직 점심 전이니 어디가서 식사부터 합시다"하며 영후의 손을 마주 잡았다.
    눈길이 얼음판처럼 미끄러워 서로 팔을 잡고 조심하며 근처 조그만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뜨끈한 감자탕 전골을 시켜놓고 회장이 먼저 사업에 관해 대화를 풀어나갔다.
    미국현지사정은 전혀 문외한인지라 영후는 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 하는 식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낫도생산에 관한 기술적인 문제나 상품의 품질에 관한 부분은 대부분 영후가 설명하고 미국현지의 시장상황은 회장이 영후에게 설명하는 식이었는데,
    0회장은 36개주 대형 마켓과 식료품점에 무작정 진출하는 것은 위험하므로 일단 미국내에서 삼만명정도 회원확보를 한 후에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 안전하며, 일년정도 지나 삼만명의 회원확보가 되면 년50억정도의 매출과 4,5년후에는 1,000억대의 매출을 달성하겠노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영후의 예상은 회장과 조금 달랐다.
    0회장의 말대로 삼만명 회원이 확보된다해도 30%정도가 매월 구매를 한다고 보고 판매예상액을 삼분의 일 정도로 잡아야 무난할 것으로 추측했다.
    회장은 가능하다면 영후가 미국현지에서 생산한다면 더 바랄게 없는 환상적인 팀이 될 것이라며, 현지 공장을 회장측에서 임대해 줄테니 영후가 생산을 맡아서 하는 방안에 대해 의논을 했는데 미국현지사정을 전혀 모르는 영후로서는 신중하지 않으면 안될 사항이었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욕심은 금기사항이다.
    눈앞의 신기루에 눈이 멀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서두르지 말자. 순리대로 하자' 영후는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공장을 임대해 주신다고 해도 일단 두사람이 일년간 미국체류비용만 오천만원정도 예상되고 워크비자취득비용과 차량구입비용등등 약 일억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보면 매출 수요가 전무한 현시점에서 현지 생산은 무리하게 여겨집니다"
    영후의 의도를 파악한 회장이 고개를 끄떡이며 영후에게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면 낫도와 낫도파우더, 낫도된장, 낫도고추장, 낫도간장을 규격에 맞춰 보내주시고 오퍼를 내 주십시요. 물론 품질은 표준화되고 일정해야 합니다"
    "그게 순리같습니다. 서로 부담스러워서는 안되지요" 회장의 간결한 방안에 영후는 회장이 과연 프로답구나 하고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장은 이번 시작이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며 서로 양보하는 마음으로 해나가자며 진지한 표정으로 영후를 쳐다보았다.
    福如海
    http://blog.naver.com/natto114

    영후가 국내에서 생산단가를 맞춰보려고 궁리를 하고 있던 어느 날 메세지하나가 영후에게 날아왔다.
    오래 전에 연락이 끊어졌던 김희열에게서 만나자는 소식이 온 것이다.
    '김희열입니다. 오래동안 소식 못 전해 미안합니다. 항상 여사장님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마침 좋은 스폰서를 만나 여사장님과 사업을 하고 싶으니 한번 만나 얘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날아온 한통의 문자메세지.

    이틀후 서울행 KTX를 타고 용산역에 도착한 영후에게 김희열이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오랫만입니다. 여사장님"
    "허! 사람 참, 그렇게 소식을 뚝 끊고 사라지는 사람이 어디 있소?"
    영후도 반갑게 손을 마주 잡으며 그동안의 근황을 물었다.
    "이 것 저 것, 손대는 것 마다 일이 꼬여서 한동안 연변에서 숨죽이고 있었지요 하하"
    김희열이 예의 호탕한 성격을 드러내며 웃었다.

    근처 조용한 찻집을 찾아 자리한 후 김희열이 꺼낸 얘기가 흥미로왔다.
    "여사장님, 근황은 노용천 식품기술사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제가 중국에 꽌시인 한족 친구가 있어요. 산동 모씨인데 중국에서도 명문 10대가에 꼽히는 가문입니다. 이 친구가 청화대학교 출신인데 지금 부주석 왼팔 노릇하는 삼성장군과 아주 절친인데 제가 그 장군을 같이 만난 자리에서 여사장님 낫도얘기를 했지요. 이 양반이 대번에 그거 한번 해보자 하더군요."
    김희열이 영후를 쳐다보며 상기된 억양으로 다음 말을 꺼냈다.
    "산동성에 계란대추를 쥬스로 가공하는 공장이 있는데 제가 100평정도를 쓸 수가 있습니다.
    제가 설비를 해드릴테니 거기서 생산해서 군 장성을 통해 중국군 비상전투식량으로 납품사업을 해 봅시다.
    원래 병자호란때도 콩삶아서 말 안장밑에 가지고 다니면서 전쟁식량으로 쓰던 나라 아닙니까?"
    영후는 내심 긍정적이 되어서 김희열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미국내 36개주의 대형마트와 20여년을 거래하고 있는 회장의 오더와 중국현지에서 중국고위장성의 협조라면 한번 해 볼 만한 사업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전시회때 만난 중국내 식품회사의 대표와 말레이시아,싱가폴등 동남아시아의 200여개 브렌치에 삼십년간 식품을 수출하는 업체의 대표도 제품생산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며칠 후 한양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15년 전에 중국에 공장을 차려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 박박사에게서 뜻밖의 기별이 왔다.
    대련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와팡텐에, 사업파트너로 15년간 꽌시관계에 있는 00그룹 왕회장 땅 35만평에 콩농사를 지으며 공동사업을 하자는 엄청난 낭보를 전해 온 것이다. 그 땅은 4년전 한국의 풀x원이 콩을 경작하려고 임대하려다 못한 땅이라고 한다.

    박박사에게서 낭보가 이어졌다.
    박박사와 오랜 꽌시관계로 호형호제사이인 '재키첸'이,
    대만에서 홈쇼핑방송사를 운영하는 친구 주회장의 상해 인근에 있는 GMP시설이 완비된 건강식품공장내에 생산시설과 설비를 갖춰주겠다는 제의를 해왔으니 그쪽부터 시작해서 자리를 잡은 후 왕회장과 파트너쉽으로 사업을 전개하는게 어떠냐고 영후에게 제의를 해왔다. 박박사의 제의대로라면
    일단 미국쪽과 대만쪽은 판로를 확보하고 시작하는 셈이므로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00그룹 왕회장은 동북 3성을 통털어 5대재벌에 꼽히며 막강한 재력과 인맥으로 중국내 고구려문화촌과 같은 중국의 문화사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부동산 개발로 돈이라면 신물이 날 정도로 번 사람이 원하는 건 당연히 명예가 아니겠는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더니 이거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영후에게 미국 36개주와 중국대륙을 훨훨 날 날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5년내 월매출 1,000억을 달성할 것이다'
    영후에게 새로운 열정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영후는 태산을 오르는 마음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사실 영후가 믿는 것은 영후자신이 아니라 바로 이 일을 하게 하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었다.
    영후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이루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
    청도에서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는 김권목사를 보조하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영후는 깨닫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이므로 영후는 일에 대한 염려나 근심없이 감사한 마음과 기쁨과 열정이 가득 차 올랐다.
    이제 새로운 10년이 시작되고 있음을 영후는 느끼고 있었다.

    12시 김포공항발 상해 2시 도착.
    영후는 보딩하기 2시간전에 김포공항에서 박박사와 만나 상해에 도착했다.
    상해 홍차우공항.
    한국보다 위도상으로 조금 남쪽이라 날씨는 한국과 거의 비슷한 늦은 봄날씨였다.
    도착시각에 맞춰 재키와 박박사의 아들이 마중나와 호주의 공장으로 우리를 픽업해 주었다.
    상해서 한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공장은 규모면에서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GMP 설비가 완비되어있는 2층은 건강식품공장이라기보다는 제약회사수준이라고 하는게 나을듯 했다.
    영후는 미리 준비해 간 공정도와 제조설비에 대해 설명했고 동사장은 재키를 통해 미리 설명을 들었던 관계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영후를 환대해 주었다.
    사흘간의 극진한 환대속에 제조시설과 설비,그리고 운영자금일체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영후와 합작법인을 설립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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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방 상해 동사장과 재키첸, 총경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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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식적이지만 MOU체결을 하자는 공장측의 제안에 영후는 번거로운 절차를 생략하기로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조금더 시간을 갖고 진행하자는 언질을 남겨두고 박박사와 돌아왔다.
    "저쪽의 제안이 달콤하긴하지만 동업하고 싶지는 않네. 대련쪽에 가서 독자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싶네" 영후의 속내를 이해하는 박박사는 두말없이 열흘후 대련행 약속을 하고 김포서 영후와 헤어졌다.
    상해쪽 일은 일단 그렇게 정리를 해두고 상황에 따라서 진행해 나가기로 작정했다.
    아무래도 영후는 대련에서 독자적으로 왕회장의 도움을 받으며 사업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 부담없고 자유스럽다고 여겨졌다.

    4월 00일 금요일
    밤새 추적추적 봄비가 대지를 적신다.
    며칠전부터 영후는 목감기가 심해져 곤욕을 치르고 있다.
    내일은 상경해서 일요일 1시 대련행 출국준비를 해야 한다.
    일단 대련으로 가서 왕회장을 만난 후 다시 상해로 다녀오기로 박박사와 일정을 잡았다.
    상해쪽에서 너무 적극적이고 호의적으로 합작을 하자고 채근하는 통에 영후의 마음이 흔들렸다.
    '어차피 돈이 들거나 손해나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상해와 대련은 남방과 북방으로 거리상으로도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 양쪽에 생산기지가 있는 것도 나쁠게 없다는게 영후의 최종판단이었다.
    더군다나 상해쪽 회사의 막강한 재력과 전국규모의 거래망을 활용할 수 있으므로 동업이라는 부담만 제외한다면 영후로서는 사실 굴러온 호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박사와의 꽌시관계인 회사쪽의 열성적인 태도에 영후는 이번 대련가는 길에 상해에 들러서 회사와 합작계약을 체결하기로 한 것이다.
    이제 중국본토의 남방과 북방에서 영후의 새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1시간 비행후 대련공항에 도착한 영후와 박박사는 미리 마중나온 이춘화여사의 안내로 대련시내에 있는 왕회장의 호텔에 도착했다.
    "우선 예약해둔 방에서 잠시 기다리시면 왕로반께서 연락오시는 대로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련에서 인민대표와 시의원을 지낸 한국담당인 조선동포 이여사의 세심한 배려로 영후와 박박사는 예약해둔 룸에 짐을 풀었다.
    왕회장의 호텔인 대련반점은 대련시내에서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최고급 5성급 호텔이었다.
    대련시내에만 5개의 호텔을 가진 왕회장은 동북 3성을 통털어 5째 안에 드는 재벌로 부동산관련 기관 공무원생활을 하다가 15 년전에 부동산개발사업에 뛰어들어 떼돈을 벌기 시작한 신화적인 인물로 소문나 있었다.
    "뚜뚜뚜..."
    영후의 룸으로 이여사의 연락이 왔다.
    저녁 7시에 왕회장과의 저녁식사 일정이 잡혔다.
    저녁 7시까지 4시간정도의 여유가 있었으므로 영후는 박박사와 간단하게 사우나를 다녀오려고 연락하려는 순간 방문두드리는 박박사의 음성이 들렸다.

    이심전심이 이런건가?
    박박사도 영후와 사우나를 가려고 먼저 영후에게 온 것이다.

    박박사와 사우나에서 소금마사지까지 받고 개운해진 몸으로 룸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팔다리를 길게 뻗고 기지개를 켜니 그야말로 상쾌하기 그지 없다.
    가벼운 졸음기가 영후에게 몰려왔다.
    잠시 눈좀 붙혀도 될 시간 여유가 있었다.
    "뚜르르...뚜를르..."
    꿈결인가 영후는 전화기의 벨소리에 화들짝 눈을 떴다.
    잠시 눈을 붙힌다는게 코까지 골며 잠이 들었나보다.
    "웨이?"
    " 이춘화예요..로비로 내려오시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벌써 7시가 되었나? 6시 50분. 영후는 스마트폰으로 시각을 확인했다.
    박박사는 먼저 로비에 내려와서 이여사와 환담을 나누며 영후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깜박 잠들었네... "
    "비행기 타고 오시느라 고단하셨나 봅니다"이 여사가 웃으며 한마디 거들며 영후와 박박사를 왕회장의 귀빈 접대실로 안내했다.

    {FILE:5}
    <북방 대련 00그룹 왕회장과 귀빈접대실에서>

    접대실에는 왕회장과 왕회장의 고향친구들 여럿이 미리와 담소하며 영후와 박박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FILE:3}> -< 대련 00그룹 왕회장과> 1.5 MB

    "전망이 좋은 상품이요" 아직은 50대초반으로 보기에는 젊어보이는 왕회장이 영후를 보고 중국말로 말했다.
    이여사가 통역해 주면서 왕회장이 매일 낫도를 먹고 있단다.
    "이 상품은 더 설명할 것도 없소. 잘 알고 있으니 내일 와팡텐에 공장을 둘러보러 갑시다.
    오늘은 10년지기를 만났으니 맘껏 즐깁시다"
    왕회장이 박박사를 쳐다보며 와인을 들어 올리며 건배했다.
    영후와 왕회장의 고향친구들이 모두 술잔을 부딪히며 건배했다.

    얼마나 마셨을까?
    한족들은 술이 세다는 말을 미리 들었지만 왕회장은 그야말로 두주불사였다.
    00그룹에서 직접생산하는 와인과 빠이주 그리고 맥주와 고량주, 나중에는 비싸다는 꼬냑까지 주는대로 거절하지 않고 마신 박박사가 앉은채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러렁 그러렁"
    앉은 채로 코를 고는 박박사를 왕회장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웃었다.
    "친구가 자니 이제 그만 마시고 헤어집시다"

    <{FILE:2}> - <00그룹 왕회장과 박박사와> 7.4 MB

    이여사가 힘센 보디가드 두사람을 시켜서 박박사를 룸으로 모시라고 지시했다고 왕회장의 말을 통역해주었다.
    골아 떨어진 박박사의 덕분에 10시 전에 술자리가 끝났다.
    술기운과 피곤이 몰려와 영후도 침대에 입은 옷 그대로 널부러져 잠이 들었다.

    아침 6시에 룸의 벨이 울렸다.
    "식사하시고 와팡텐으로 가시잡니다" 이여사가 룸 전화로 일정을 알려왔다.
    호텔식당에서 부페식으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 영후와 박박사는 왕회장의 부지런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와팡텐으로 가는 왕회장의 차안에서 수천억을 번 사람이 손님을 접대하는 술자리후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5시에 수영을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는 이여사의 말에 그만 기가 질리는 느낌이었다.

    "와팡텐의 왕회장 호텔에 도착후 왕회장이 바로 영후를 안내한 곳은 한번도 다른 업체에 권한 적이 없었다는 깨끗한 건물이었다.
    "이 건물이 마음에 들면 쓰시요"
    왕회장의 권유에 영후는 마음이 흡족해져서 박박사를 쳐다보았다.
    박박사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왕회장에게 천정공사와 바닥을 마무리해 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물론 해드리겠소. 그리고 잘될 때 까지 도울테니 열심히 해보시요"

    왕회장이 권한 건물은 바로 왕회장이 건설을 추진중인 당나라 민속촌 지역이었다.
    일본의 전국민이 매일 먹고 있는 낫도가 바로 당나라때 일본의 고승이 배워갔다는 걸 알고 있는 왕회장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라고 이여사가 설명해 주었다.

    점심식사시간에 왕회장은 매일 대련텔레비젼에 와인과 00그룹의 제품을 광고하는데 거기에 영후의 제품을 같이 끼워주겠다면서 '초향당'이라는 브랜드로 거래하고 있는 전국 300개 마켓에 입점시켜 주겠다는 꿈같은 말을 영후에게 했다.

    "여사장님은 복이 많네요!" 이 여사가 영후를 웃는 얼굴로 쳐다보며 말했다.




    福如海-복이 바다와 같다. {FILE:4}
    <대련 00그룹 왕회장과 박박사와 귀빈접대실에서>
    {FILE:7}
    {FILE:8}
    {FILE:1} - 59.51 MB


    대련에서 왕회장의 협조를 얻어 낸 영후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제 당나라때 일본이 배워 간 낫도로 다시 중국의 식탁을 침범하는 문화침략을 중국전통발효식품으로 막아낼 수 있는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 것이다.

    금상첨화라고나 할까?
    상해에서 만날 예정이었던 미국쪽 0회장이 영후에게 구매의향서를 보내왔다.
    몽골쪽에 중요한 일이 있어 체류중이라 직접 만나러 올 수 없는 상황이라며
    영후가 제시한 단가를 수락한 구매의향서를 보내온 것이다.


    Campro Global Resource Group Inc.
    Add: 570 Main St., 2nd Fl., Fort Lee, NJ07084


    LETTER OF INTENT

    Date: May 13, 2011
    LOI No: CGR--11034
    To: Seller Principal

    Dear Sirs,
    We, CRG Group Inc. are ready, willing and able to purchase the following commodity as per the specification and quantity for the price as specified in the terms and conditions as started below.

    1. COMMODITY: Frozen Natto & Natto Powder

    2. ORIGN: China

    3. TOTAL/CONTRACT QUANTITY:
    1) Natto Powder : 5M.T. / Month(60M.T./Year)

    4. PACKAGING:
    1) Natto Powder : (1lb x 2Can/Inner Box) x 3/Out Box

    5. DELIVERY SIZE: DDP USA

    6. MODE OF PAYMENT: T/T 30days After DDP

    7. TARGET PRICE:
    1) Natto Powder : US$ 15 per 1kg DDP

    8. DESTINATION PORT: Any Port in USA

    9. BUYER’S INFORMATION:
    Company Name: Chamko Global Resource Group Inc.
    Company address: 570 Main St., 2nd FL., Fort Lee, NJ 07084
    Main Bank Name: Woori America Bank

    10. Validity:
    July 31, 2011

    Buyer:
    Campro Global Resource Group Inc.
    Heng Su ki / Prsident

    첫 오더치고는 구매수량도 엄청났다.
    매월 몇톤의 낫도파우더를 주문한 것이다.
    영후를 믿고 오더해 준 0회장에게 영후는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최상의 품질로 보답하는 것' 영후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2011.5.16
    福如海





    出征記



    *出師表*



    가자! 崇山 少林으로!
    길없는 홍해를 향해 모세가 믿음으로 나아 갔듯이!

    태산을 오른다. 산을 오르는데 산이 없어지기야 하겠는가?
    너무 높이 날아 오른 龍이
    날 하늘을 잃었다는 시황제의 아버지
    2,000년전의 할부지 國商 呂不爲처럼
    거대한 중국 대륙을 한번 날아보자.
    가장 높게 나는 도요새처럼
    더 이상 날 하늘이 없어질 때 까지.

    12,9,14



    <序盤>

    2011,8,11 Pm 8시.
    상해 홍차오공항에 도착하다.
    대련의 삼보그룹 왕청주회장의 호의를 보류해 두고 후조오로 왔다.
    중국진출은 아무래도 혼자 시작하는 것보다는 현지회사와 합작하는 것이 힘이 덜 든다는 판단에서다. 상해서 140km 1시간여 거리. 浙江省 후조우. 바다만큼 큰 호수 太湖가 있는 곳.

    '湖州珍露生物制品有限公社'

    나는 이제 호랑이굴로 찾아온 것이다.
    이제 호랑이굴 앞에서 호랑이를 불러내야 한다.

    하루 전에 와있던 박박사와 부총경리가 마중나와서 후조우시내의 즈베이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주진로생물제품유한공사'에 도착한 것은 4박 5일간 즈베이호텔에서 머물다가
    공장내 숙식할 방과 사무실준비를 마친 8월 16일 오전 11시경.

    중국 남방 湖州의 무더위는 또 다른 시련이다.
    큰 湖水 太湖가 있는 이 곳 湖州의 기후는 습도가 높아
    하루종일 사무실과 숙소의 에어컨을 켜두지 않으면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그야말로 푹푹찌는 찜통속 같다. 따로 한증막에 갈 필요가 없다.
    언젠가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있을 때의 습기 하나없이 온몸이 따갑게 느껴지던 더위와는 정반대의 기후다.
    이제 한국에서의 나는 없는 것이다.
    중국에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중국인들의 만만디에 질리지 말고 천천히 한걸음씩 태산을 오르는 것이다.

    8월 22일.
    동사장들과 합작회사의 계약서에 서명후 호랑이굴에 온 각오를 새로 다졌다.
    마침 미국의 피회장이 내몽골쪽 일을 보러 중국에 와 있다고 반가운 연락이 왔다.
    상해 방문일정을 잡아달라는 요청에 내몽골쪽일을 마무리하고 상해 방문일정을 알려주기로 답신이 왔다. 타이밍이 절묘하다.
    북경의 곽소일사장과도 통화했다. 동남아시아쪽 200여개 브렌치를 핸드링하는 큰 바이어다.
    북경에서 만난 지 3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연락이 닿으니 좋은 느낌이다.

    급할 것 없는 남방사람들.
    처음 시작이 어렵지 한번 물꼬를 터 놓으면 그때부터는 순리대로 일사천리다.
    합작회사 '진로식품유한공사'설립계약후 열흘만에 회사 동사장과 총경리, 부총경리,
    깐깐한 생산품질관리부장과 도면을 놓고 공장내부설계와 설비에 대해 합의하다.

    재키첸과의 지분관계도 재키의 지분양보로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하게 해결되었다.
    부담이 컷었는데 생산쪽 지분보다는 대만의 친구 홈쇼핑 주회장과 판매쪽에 주력하겠다고 하니 나로서는 부담이 없어졌다.
    '대인은 신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공자曰.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8,24.
    대련의 이여사는 거의 매일 전화오지만 받을 수가 없다.
    이쪽에 와있다고 할 수도 없고...
    6개월치 임대료를 선납해 놓고도 연락을 안하니 답답할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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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피회장님 메일]
    보낸사람 : krpro21 12.11.19 23:05
    보낸날짜 : 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23시 05분 42초 +0900


    여사장님!!!!

    참 대단하십니다.
    그 힘든 중국 시장을 개척하고 계시니 저는 정말 작아지는 느낌이 드는군요. ㅋㅋ

    앞으로 승승장구하시길 늘 기도하겠습니다.

    여기는 복구가 거의 완료되어 생활은 완전히 정상을 찾았고 몇몇 지역만 주유소가 아직
    정상화가 안되어 기름 구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도입니다.

    저는 다음주에 잠시 키리기즈를 다녀올 예정이고, 계속 뉴욕에 있을겁니다.

    자주 연락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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