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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아웃사이더 2부 -<한국편>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6-15 16:06 조회5,865회 댓글0건

    본문








    1.
    영후는 요즘 익숙지 못한 컴퓨터 자판 때문에 여간 애를 쓰는게 아니다.
    그야말로 독수리가 먹이를 콕콕 찍어대듯 떠듬떠듬 독수리타법을 구사하면서 끈질기게 자판과 씨름하고 있다.
    자음과 모음이 총총이 박힌 자판을 노려보면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찜통 같은 더위를 견디며 영후는 지금 <장애인 복지정책의 개선방안>이란 거창한 논제로장애인 복지통합법 제정에 관한 논문을 작성중이다.

    선풍기 바람에서 열기가 훅훅 나온다.
    그나마 이 바람도 없으면 삼복더위에 배겨나기도 힘들 지경이다.
    직장 다니며 대학원에 다니던 아내가 몇달 전부터 졸업논문 걱정을 하면서,
    '학교근처에서 300만원만 주면 해준대더라'면서 슬쩍 영후에게 건넨 말에
    '이젠 공부도 돈이 대신 해주는 세상이네! 그깟것 내가 해줄테니 그 돈 내게 줘'하며
    영후가 정색을 하자 기다렸다는듯이 '정말 자기가 해줄거지? 알써~ 통과만하면 돈 굳는다 잘해 봐'하며 맡긴 일이라 석달째 이 일에 늘어붙어 곤욕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해줘야 돼'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자신도 모를 일이지만, 살면서 아내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었다는 갑작스런 자각이 영후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이 생각이 영후를 붙들어 앉혀놓고 있는 중이었다.

    박국도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해가 서쪽을 붉게 물들이며 하루의 위세를 누그리고 있을 때였다.
    이 시간이 이 친구에겐 술시다.
    "어이 여기 용산이야, 가는 중이니, 먼저 가서 기다리게"
    목소리로 보아 일이 잘 되었나 보다.
    마침 출출하기도 하고 잘 되었다는 생각에 전화가 반갑다.

    "박사장은 어디 두고 혼자요?"
    단골로 다니는 광주집 아지매가 반색을 하며 묻는다.
    "용산서 오는 중이래, 오리나 한 마리 구워 주오.
    에구 더워, 아지매, 에어컨이나 하나 달지 돈벌어 엇다 쓰오?"
    "형편이나 되간?"
    구석에 있는 선풍기를 당겨주며
    "너무 더워 손님도 없소" 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너 댓평 되는 식당안도 찜통이긴 마찬가지였다.
    참기름으로 버무린 고기가 고소한 냄새를 풀풀 낼 때에 박국도가 작달막한 키에
    불룩 나온 배를 식당 안으로 들이밀며
    "차가 얼마나 밀리는지 원" 하며 나타났다.'
    "퇴근시간이라 그렇지" 영후의 인사에
    "오늘 한 건 했더니 기분좋다. 미쓰방 덕에 한건 했어"하고는 소주잔을 쓱 내민다.

    오전에 사무실서 미쓰방이 전화로 끈질기게 상담하던, 비디오가게를 찾던 손님을 만나 계약을 하고 오는 길이다.
    급매로 나온 비디오가게를 싸게 잡아 두었다가 제값 받고 넘겼으니 기분이 좋을 만도 하다. 동네서 몇년하던 사진관 후딱 팔아 치우고 영후가 하는 부동산사무실에 와서 서너달 일 배우고 사무실차린 친구가 보통 수완이 아니다.
    "청출어람이다 이눔아!"
    "진작 이걸 했어야 했는데, 돈이 굴러 다닌다 굴러다녀"
    담배를 빼어물며 박국도가 호기를 떨자
    고기를 뒤집어 주던 광주댁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나도 좀 배웠으면 좋겠는디" 하며 찜통 같은 열기를 한숨 훅 불어내었다.


    2.
    연일 계속되던 찜통 더위가 태풍 더그의 덕으로 기세를 한풀 꺽자 더위에 지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속살이 보기보다 많이 찐 아내는 더위엔 젬병이다.
    아내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자기 오늘 이발해"
    아침에 출근하며 아내는 영후에게 명령처럼 말했다.
    "짧게 깍아야 젊어 보여, 세종 미용실 라라에게 가"
    미용실에 가기전에 면도부터 한다.
    결혼 한지 오년이 후딱 지났다.
    아직까지 아이가 없는 영후에게 아내는 아이처럼 군다.
    그늘지고 어두워 보이는 얼굴 하나가 이쪽을 보고있다.
    '넌 누구냐? 원하는게 뭐야? 얼굴을 펴라, 웃어야 돼'
    '탁탁' 스킨로션을 얼굴에 소리나게 두드려 바른다.

    중동붐이 일어 너나 없이 중동으로 떠나던 때,
    영후는 자형의 권유에 비행기를 탔다.
    일 년간의 사막.
    쓰리쿼터를 타고 가도가도 끝이 없던 지평선.
    귓전을 때리며 온 세상을 날려 버릴듯 윙윙거리며 불던 모래바람.
    그 뜨거운 모래바람 속에서 홀로 서 있던 곳.
    끝없는 고독의 심연으로 그를 끌어내리던 그 사막을, 영후는 잊을 수 없다.

    바보같이, 대한의 남아가 이렇게 시시하게 쓰러지다니. '말도안돼, 말도안돼'
    뜨거운 모래바람이 이국의 한 청춘을 쓰러뜨린 곳.
    '언젠가 다시 오리라, 기필코 쓰러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눈물을 뿌리며 떠나온 그사막엔 지금도 뜨거운 모래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다.
    영후가 후송되어온 곳에선 또 다른 바람이 불고있었다.
    자고 깨면 치솟는 아파트, 부동산.
    사람들은 그 바람에 휩싸여 아우성이었다.
    영후가 돌아온 곳은 또 다른 사막이었다.

    3.
    둔촌동 산어귀에 있는 행려병자와 무의탁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는 <애덕의 집>은
    운영하는 사람이 몸에 치료불능의 신부전과 합병증을 앓고 있는 분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는지 헌신적으로 그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는 카톨릭신자였는데 사람들은 그를 '안토니오형제'라고 불렀다.

    어느날 반포의 성당에 지원요청을 한 것을 성가대에서 활동하던 한 자매가 자원봉사차 찾아왔다.

    진눈깨비가 풀풀 날리던 어느 날, 그 자매는 까만 투피스차림으로 <애덕의 집>을 찾아왔다.
    "여기가 <애덕의 집> 인가요?"
    한쪽 구석에 마련된 작은 사무 보는 방으로 그자매가 들어오며 물었다.
    "예, 잠간 기다리라고 하네요, 먼저 오신 분이 계신답니다"
    불과 십여분 전에 찾아와 바깥 눈구경을 하고 있던 영후는 손님을 맞은 셈이 되었다.
    바알간 불꽃을 폴폴내며 타고 있는 조그만 톱밥난로 옆에서
    두사람의 기나긴 만남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자매는 어느 대학병원에서 일한다고 했는데,
    영후는 그때 문득 사막에서 읽었던 강유일씨가 쓴 소설 '배우수업'이 떠올랐다.
    - 가난한 연극배우 임현빈과 수술실 간호사 정제하 -.
    사막 한 가운데서, 끝없는 고독의 심연 속에서 만났던 가엾은 제하-.
    언젠가는 제하를 만나리라, 그 지순한 사랑을 만나리라.
    영후는 제하를 만나리란 믿음을 키우고 있었다.

    잠시 후 안내되어 들어간 방에서 영후는 그만 헉 소리를 지를뻔 했다.
    사지가 다 잘려나가 몸뚱이만 남아 천장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
    몸을 연신 흔들거리며 침을 질질 흘리는 정박아.
    등에 낙타처럼 불룩한 혹을 달고있는 곱추.
    근육이 위축되어 뼈만 앙상한 근위축증환자 등등
    좌우지간 그 집에 기거하는 스물다섯명 모두가 성한 곳은 한군데도 없는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은 사람이 아닌, 팔 다리가 부러지고 망가진 인형들처럼 끔찍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능숙한 솜씨로 욕창이 있는 사람을 소독해서 거즈를 대어주고 닦아주고 하는 자원봉사자 들을 보면서
    영후는 버려진 이웃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바로 그때 알게되었다.

    <애덕의 집>에서의 첫만남 이후, 두사람은 특별한 소개나 연락처를 남기지 않고 덤덤히 헤어졌는데, 기이한 일은 <애덕의 집>대문을 나서서 산아래 길을 걸어가던 영후가 몇미터 앞서가는 그자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번개치듯 환한 빛이 번쩍하면서
    '나의 반' 이라는 소리가 천둥소리같이 영후의 귀에 들려온 것이었다.

    (※빛과 소리로 계시하신 神의 목소리---- 실제로 경험한 기이한 일)

    너무나 짧은 찰나의 일이라 영후는 순간 멍한 마음이 들었지만 환청이겠거니하고 개의치 않고 내려왔다.

    그 첫만남 이후 한달쯤 지난 12월 어느날 진찰하러간 대학병원 복도에서 영후는 그자매를 정말 뜻밖에 또 만나게 되었는데
    '벨라뎃다'란 세레명을 기억하고 있던 영후는 너무 반가워서 '벨라뎃다!'하고 불렀다.
    그날 벨라뎃다는 영후를 위해 여기저기 부지런히 도우러 다녔고 그 이후 두사람의 만남은 특별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협심증 증세가 있다고 담배를 끊으래" 의사의 말을 전하자 벨라뎃다는
    "담배도 끊고 술도 같이 끊어야 해요"하고 당부했다.
    어느날은 영후가 잔뜩 술에 취해 '나같은 사람 그만 만나고 좋은사람 만나'라고 떠밀자 영후의 손을 꼭 쥐곤 '꼭 바보온달 같애'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사막에서 잃은 건강과 실직으로 고통스러워 하던 영후를, 벨라뎃다는 사랑의 따뜻한 묘약으로 어두운 나락에서 건져올리려 애썼다.

    <애덕의 집>에는 스물 다섯명의 무의탁환자와 중증의 장애자들이 모여 살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집밖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들도 몇 있었다.
    그들은 주로 산어귀 양지 바른 곳에서 줄 담배를 피며 잡담들로 하루 해를 지우곤했는데 거기에 영후가 끼게 되었다.
    담배꽁초에 불을 붙히며 주방일을 맡아보는 육손이 김원휴가 휠체어에 앉아있는 최정환에게 물었다.
    "최형제 나도 데려 갈라오?"
    "지금같이 나가면 원장에게 욕먹어"
    최정환이 주용기를 보며 "일단 용기하고 둘이만 갈작정이여..." 하고 정색을 했다.

    월남에서 작업하다 다리를 잃은 외다리 주용기,
    버거씨병으로 두다리를 잃은 우총평씨,
    강남 봉은사근처에서 넝마주이질 하다가 덤프트럭에 두다리를 잃은 김봉대,
    최정환은 불구가 되기 전, 대전바닥을 휩쓸고 다니던 소문난 깡패였는데 어느날 나이트클럽에서 패싸움 끝에 허리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되어 시립병원과 복지시설을 떠돌아 다니다
    <애덕의 집> 식구가 되었는데, 이들 다섯명이 요즈음 영후가 자주 어울리는 멤버들이었다.

    그런데 요즘 최형제가 일을 하나 꾸미고 있는 중이다.
    언제나 예수덕에 등따시고 배부르게 잘 지낸다고 찾아오는 봉사자들만 보면 너스레를 떨면서도, 그는 요즘 독립할 계획으로 가득차 있다.
    <애덕의 집>에서 한 일년정도 익힌 서각하는 일이 이제 능숙해지자 그는 이참에 독립하기로 생각을 굳힌 것이다.

    "이거 자매님 같다드려"
    며칠전 <믿음 소망 사랑> 이란 글자가 새겨진 나무조각 하나를 내밀때 '내다팔아도 되겠다'하고 영후가 감탄하자 그의 눈빛이 반짝 빛났었다.
    영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구의 몸으로도 돈벌이를 할려는 끝없는 욕구, 욕망이란 저렇게 강렬한 것이다.
    산다는 것은 어차피 동물적인 생존경쟁이 아닌가?
    홀로 높이 날아 오르려는 갈매기보다 먹이를 위해 피터지게 싸워 대는 동물적 욕구에 가득찬 갈매기가 오히려 순수하지 아니한가?
    작업대앞에서 숫돌에 칼끝을 세우며 그는 한 마리 갈매기의 욕망을 다져 왔던 것이다.

    "안토니오원장에게 허락을 받아야 될텐데?"
    영후의 말에 최형제가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맞 받았다.
    "여형제가 얘기 좀 잘해줘, 일전에 내가 한번 슬쩍 말하긴 했는데---"
    "김원휴는 여기 주방일 해야되니께 한달뒤에 합류하고, 주용기는 내가 데려가서 일시켜야되니께 지금은 말하지말고, 나 나간 후에, 바로 나오면 되고"
    양지바른 담벼락 밑 이었지만 오후의 사그라져가는 햇살이라 날이 차가웠다.
    찬공기에 김봉대가 움츠린채 마른 기침을 했다.

    며칠 후 안토니오가 영후를 찾았다.
    "최형제가 나가겠다고 조르니 말릴 수가 없군요, 시흥쪽에 갈 곳이 있다고 하니 여형제께서 좀 보살펴 주시면 좋겠습니다."
    "주방장도 같이 간답디까?"
    짐짓 알고 있으면서 영후는 뜻밖인 것처럼 한마디했다.
    "김형제는 여기에 있을 겁니다"
    조용히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영후는 떠나는 이에 대한 서운함이 가득함을 보았다.

    일주일후 토요일 오전에 1.5톤 포터에 이사짐이 한 차 실려졌다.
    서각에 쓸 도구와 재료로 쓸 나무들이 거의 전부였는데 최는 모두 자기가 마련 한 것인양 당당하게 챙겨 싣고는 시흥으로 떠났다.
    시흥에 있는 어느 공터에 도착해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잠시 기다리니 청년들 너댓명이 나타나 인사를 했다. 그들중에 한사람이 구면인 듯 최형제를 반갑게 맞이했다.
    근처 어느 개척교회의 청년부원 들이라고 소개를 한 후 그들은 천막을 치고 포터에 가득한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청년부회장이 자기 친척이 놀리고 있는 땅이라며 주선 해 줬어"
    최형제가 영후의 궁금한 마음을 풀어주었다.
    청년들이 돌아간 후에도 같이 따라온 육손이 김원휴는 앞으로 함께 살 곳인지라 짐 정리에 열심이다.
    바깥에서 보기보다 천막안이 그런대로 아늑했다.
    전기장판이 뜨뜻해지자 김원휴가 간이침대위로 벌렁 드러 누웠다.
    "이제 색시만 있으면 되겠다" 영후의 말에 답하듯 어디선가 귀뚤귀뚤 귀뚜리가 울었다.
    벌어진 천막틈새로 한조각 달빛이 흘러들었다.

    4.
    <애덕의 집>이 둔촌동성당 교우들의 후원으로 마천동 한 곳에 부지를 마련하여 이전하던 오월의 화창한 어느 날,
    우총평씨는 주위의 곱지않은 시선과 안토니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로서기에 돌입했다.
    최정환에 이은 두번 째의 이탈이었다.
    그는 영후와 몇몇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산어귀 공터에 패널쪼가리를 이어붙혀 하꼬방을 만들어 눌러앉았다.
    "밥 주고 잠재워 주는곳 마다하고 왠 생고생이오?"
    라면 한박스를 내려 놓으며 불쑥하는 영후의 말을 귓등으로 흘린채
    "최정환이는 어때? 잘 돼가?"하고 되묻는다.
    "바자회때 팔 물품 준비하느라고 밤을새워 일하고 있더군.. 교회에서 많이 도우나봐"
    산등성이 너머 붉은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우총평씨의 표정이 비장하다.
    "우형제도 잘 돼야 할텐데..."
    "그려...잘 될거야"
    사실 영후는 별다른 기술이나 계획도 없는 우총평씨가 최정환이 보다 더 염려가 된다.
    어디서 데려 왔는지 정신박약자인 중늙은이를 데려다 놓았다.
    머리를 빡빡깎은 그는 언제나 헤실헤실거린다.
    "성당에 혼인공고가 붙어있데?"
    그동안 애덕의집에 봉사하러 자주 다니던 벨라뎃다를 우씨도 알고 있다.
    "성당완공 되면 결혼식 할거야"
    "벨라뎃다자매님에게 축하한다고 전해줘, 아! 어제 후원회장이 다녀갔었어"
    "그~랬어? 뭐라데?"
    그동안 성당에서는 그를 돕자는 측과 도와서는 안된다는 측의 의견이 서로 분분했다.

    후원회장이 다녀갔다면 아마 우씨를 돕기로 한 모양이다.
    "본당 신부님이 무조건 도와 주라고 하셨대"
    "잘됐네!"
    무리가 통하면 도리가 물러선다던가? 그의 무대포작전이 통한 것이다.

    시흥의 최형제는 요즈음 심기가 편치 못하다.
    "차라리 김봉대 처럼 수세미장사나 할걸 씨팔!"
    담배꽁초를 바닥으로 내던지며 가래침을 태액 뱉었다.
    김봉대라면 넝마주이질 하다가 덤프트럭에 깔려 두다리를 잃은 사람이다.
    그는 요즘 주용기와 꼽추인 석환이, 털보 홍남호등과 같이 가락동 수산시장안을 기어 다니며 수세미 장사를 하는 중이다.
    최형제에게 잠시 와 있던 주용기가 보름전에 김봉대에게로 가고 난 후 최는 기세가 한풀 더 꺽였다.
    어제는 성당에서 돕기 시작한 우씨가 그동안 불어난 식구들과 함께 새로 마련된 집으로 이사를 했다한다. 신부님과 후원회원들이 모여 새로 이사한 우씨네를 위해 축도를 올리곤 대문에 <작은프란치스코의 집>이라는 문패를 걸어 주었단다.

    독립하겠다고 시흥에 내려온지도 벌써 일년째.
    인근의 개척교회에서 수시로 와서 들여다보곤 하지만 워낙 조그만 교회라 큰 진전이 없다.
    그동안 만들었던 서각품들은 반도 팔리지 않아 구석에 쳐박혀 있다.
    천막입구에 매달아 놓은 <엠마오의 집>명패가 처량하다.

    김원휴가 그 심사를 모를리 없다. 심란하기는 김원휴도 마찬가지다.
    연일 쏟아 붇는 장마비에 천막안이 온통 물바다다.
    주룩주룩 내리는 장대비속으로 '샘다방' 미스양이 커피보자기를 들고 들어선다.
    "야 좀 빨리 못와?" 최가 칼끝으로 손톱을 깍아내며 툴툴댔다.
    "이 빗속에 배달해 주는것만도 고마운줄 아셔 흥!" 미스양이 우산을 접으며 샐쭉 한다.
    "너 눈탱이 보니 어제밤에 외박했구나, 요것들이 우리같은 병신들은 쳐다도 안보고-"
    "아유! 오빠는 돈만 많이 줘봐!, 그나저나 그게 되기는 돼?"
    "이~이런 쌍년!!" 최가 미스양을 향해 칼끝을 쑥 내밀었다.

    5.
    예상외로 짭잘한 수입을 올리기 시작한 김봉대의 식구들은 마천동 버스종점옆 버려져 있는 시유지에다가 동네목수를 사서 판자집을 지어 들어앉아 버렸다.
    동사무소의 골치거리인 무허가 판자집이 하나 생겨 난 것이다.
    이들은 김봉대를 중심으로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였는데 얼마후 그 판자집 지붕위에
    <해바라기 집>이라는 큼지막한 간판이 올라 앉았다.
    이로서 애덕의 집에 몸을 의탁하던 장애자들의 3번째 독립이 시작되었다.

    우총평씨나 최정환이쪽보다 <해바라기 집>쪽이 영후가 할 일이 더 많았다.
    아침 저녁 장사를 나갈 때나 들어 올 때나,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채비를 차려 주고, 봉고차에 업어서 태우고 내리고- 그것은 섣부른 동정심이나 얄팍한 감상으로는 할 수 없는, 장애자를 돕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절실히 깨닫게 해 주는 일이었다.

    하루는 수산시장 안에서 장사를 하던 주용기와 시장상인 간에 대판 싸움이 붙었다.
    좁은 시장통로를 찬송가를 크게 틀고 수세미수레를 밀고 가다가 진열해 놓은 생선상자를 뒤엎은 것이 발단이었다.
    점원이 홧김에 주용기의 가슴팍을 발로 걷어 차버렸다.
    이일은 김봉대의 껀수가 되었다.
    "너는 무조건 엎어져 죽는 시늉만 하고 있어!!"
    김봉대는 인근 파출소에 점원을 폭행으로 입건시켜 놓고 영후와 같이 가게 주인을 찾아갔다.
    오래 끌것도 없이 점원 없이는 당장 곤란한 주인이 합의금으로 백만원을 쥐어 주었고, 우리는 그 일로 인해 가락시장 안에서 건드리면 골치아픈 존재들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6.
    마천동 <애덕의 집>설립자인 안토니오 형제가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땅에 떨어져 썩는 밀알처럼 많은 이들에게 씨를 뿌려주고 젊디젊은 생을 마감했다.
    그는 시작하였고 이제 가꾸고 거두는 것은 남은자의 몫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끝없는 탐욕과 위선으로 가득찬 사람인 것을, 아아 형제여!
    장례는 십부님의 영결미사로 경건하게 치뤄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간 장지에서 어두운 구름사이로 십자가의 빛을 보았다고 했다.

    병원에서 새로한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기능저하와 동맥경화에 대한 주의가 처방이었다. 영후에게 술과 담배는 절대금지였다.
    아내는 서점에서 '단카스터'목사가 쓴 <정신력의 기적>이란 책을 한권 사다 주면서 '내가 있잖아'라고 했다.
    한해 전 혼인미사를 할 때도 아내는 미소 띤 얼굴로 '내가 있잖아'하고 말했었다.
    그때 문득 영후는 아내가 바보온달과 결혼한 평강공주라는 것을 알았다.
    혼인한 다음해 영후는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여 집 근처에 조그만 부동산사무소를 개설하였는데 그때 옆에서 사진관을 하던 박국도와 자연스레 어울리게 되었다.

    하루는 김원휴 에게서 사고가 났다는 전화가 와서 시흥으로 가보니 천막이 홀랑 불에 타버렸다.
    김은휴가 난로옆에서 신나를 섞다가 실수로 불이 났다고 덧 붙혔다.
    챙겨 갈것도 없는 와중에도 공구와 성한 옷가지 몇 개만 주워 싣고 마천동으로 두사람을 옮겨 놓고나니 최정환의 독립은 실패작으로 마무리 되었다.

    "여기가 <해바라기 집>입니까?"
    어느날 <해바라기 집>에 신문기자란 사람이 찾아왔다.
    모두들 장사를 나가고 최형제와 김원휴가 장기를 두고 있을 때였다.
    그는 모일간지 문화부기자인데 곧 다가올 장애자의날 특집기사 취재차 나왔다고 자기소개를 하였다.
    "모두 몇사람이 생활하고 있습니까?"
    "일곱식굽니다" 최가 마치 자기가 주인인양 대답했다.
    "어떻게 생활을 꾸려갑니까? 모두 장애를 가지고 계신줄 아는데..."
    이것저것 묻고 수첩에 기록하고 하던 기자는 최형제와 김원휴의 사진까지 몇장 찍고 갔는데, 사흘후 새로 창간된 '스포츠조간' <장애자의 날> 특집기사에
    <암흑가의 칼잡이, 사랑의 대부로 새생활을!>이란 제하에 최정환의 사진과 함께
    <해바라기 집> 기사가 큼지막히 실렸다.

    "굴러온 돌이 박힌돌을 뺀다더니!" 김봉대로선 기가 찰 일 이었다.
    "내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이거저것 묻더니 사진 몇장 박고 간걸 내가 어떻해!!"
    최정환이 오리발을 내밀었다.
    영후는 최형제를 나무랐다. 그를 여기 데려다 놓은 것은 영후자신 이었으므로 김봉대를 대하기가 민망했다.
    '엎질러진 물이다' 김봉대는 영후를 봐서 그냥 덮어두기로 했다. 그만큼 영후의 도움이 컷기 때문이다.
    기사가 나가고 난 다음날부터 최형제를 찾는 전화가 자주 걸려왔다.

    7.
    우총평씨는 아침부터 바쁘다.
    오늘은 <작은프란치스코의 집> 식구들이 소풍 가는 날이다.
    정박아인 칠성이가 일찍부터 신이나 헤집고 다니며 소란을 떤다.
    "원장님 칠성이가 말썽 피워요!!" 부엌에서 안나 자매가 큰소리로 이른다.
    유리컵 하나를 깨뜨려 놓고 칠성이는 냉장고 구석에서 움츠린채 눈치를 보고 있다.
    열여섯의 나이인데도 정신연령은 3, 4세 수준이다. 등에는 언제나 이름표를 달고 다닌다.
    칠성이에 비해 성철이는 말이 별로 없다. 이녀석은 힘이 장사다.
    연탄나르는 일이나 힘든일도 시키면 시키는대로 다 하는 일꾼이다.
    우총평씨가 여기저기서 데려다 놓은 장애자들이 열댓명이나 된다.
    그것은 홍보효과를 위해서 우원장이 한 일이다.

    아침 식사후 후원회원들이 마련해 준 봉고차 두 대에 식구들과 우원장을 태운 후 영후는 청평으로 차를 몰았다.
    유난히 후덥지근해 물가가 생각나는 날이다.
    "그쪽도 식구가 많이 늘었다며?"
    옆에 탄 우원장이 슬며시 물었다.
    "식구수는 늘었는데 아직 여기만 못해"
    "요령껏 해야 돼"
    최정환이 신문에 난일로 김봉대와 결별하고 세곡동으로 옮겨 간 얘기를 영후에게서 듣고 알고 있는 우원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요령이란 말이 영후의 귀에 와 박혔다.
    <애덕의 집>에서 독립을 꿈꾸며 일년을 준비했던 최정환의 실패와, 아무대책도 없이 시작한 우총평씨의 차이는 정말 지금 말한 요령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워커힐 뒤쪽으로 꺾어들자 시원한 한강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교외로 나가는 길이라 영후도 기분이 상쾌하다.
    청평지나 조양천에 도착하니 곧 뒤따라 후원회장이 운전하고 온 차가 도착했다.
    산구비를 끼고 굽이져 흐르는 계곡물이 아주 그만이다.
    잘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인지라 그냥 물가에 내려놓고 있다가 다시 싣고 돌아가는 것이 오늘 소풍 일정이다.
    후원회에서 준비해 온 음식들을 나눠먹고 나무그늘 밑에서 한숨 잘려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워 졌다. 직감적으로 무슨일이 일어난걸 알고 영후는 우원장쪽을 쳐다보았다.
    후원회장이 변노인을 업고 봉고차 있는곳으로 서둘러 가고 있다.
    평소에도 혼자서 잘 못걷는 노인네에게 무슨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
    이북이 고향인 변노인은 무의탁 행려병자로 떠돌다가 이집으로 온지 보름도 안된 사람이다.
    차안에 뉘어놓고 맥을 보니 반응이 없다.
    "우선 병원으로 옮겨야 겠어!"
    시립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변노인은 이미 숨을거둔 상태였다.
    의사는 심장마비로 사망진단을 했다.
    무연고 행려병자들의 사망은 병원측에서 간단한 절차를 거쳐 벽제 화장장으로 보내 화장처리 한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도 없었다.

    "몇호실이랬지?" 병원에 온 길에 얼마전 부터 입원해 있는 최형제를 보고 갈려고 우원장이 묻는다.
    "글쎄? 찾아봐야지..." 영후는 우원장의 휠체어를 밀고 정형외과 입원병동으로 갔다.
    병실을 찾아 들어서자 마침 와 있던 김원휴가 먼저 보고는 반가워 한다.
    "더운데 고생이구나!"
    최정환이 침대에 비스듬이 기대어 "여기가 오히려 편해"하며 씨익 웃는다.
    "엉덩이가 다 썩었대, 고관절쪽으로 절단해야 된대"
    시흥에서 무리하게 작업한 탓일 것이다.
    어차피 못쓰는 다리 불편하게 끌고 다니는 것보다는 아예 시원하게 잘라 버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형편은 어떠냐?"
    "재미없어, 최형제 입원한 뒤로 내가 똥줄이 빠져..." 김원휴가 볼 멘 소리로 대꾸했다.
    해바라기집을 나와 세곡동 산모퉁이에 천막을 치고 눌러앉은 이후 식구들이 어느새 여섯명으로 불어났다. 식구수가 늘자 <신망애의 집>이라고 간판도 새로 해달았다.
    신문기사덕에 후원자가 여럿 생겨 잘풀려 나가다 최가 덜컥 입원해 버린 것이다.
    요즈음 집살림을 김원휴가 도맡아 하고있다.

    8.
    아내가 배아무개라는 이종오빠를 만나보라고 한다.
    "오후에 가게로 모시고 와"
    저녁무렵에 아내는 이종오빠란 사람과 함께왔다.
    훤칠한 키에 말쑥한 감색 줄무늬 양복차림을 한 세련돼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명함 한 장을 영후에게 건네주며 잘되느냐고 물었다.
    "용돈 벌이예요!!" 아내가 영후 대신 말하며 생긋웃었다.
    그가 건네 준 '삼중경비주식회사 상무 배신웅'이라는 명함을 들여다 보며 영후도 따라웃었다.
    "오빠가 자기하고 의논 할 일이 있데"
    "저녁이나 같이 하지"
    배상무는 조용한 일식집으로 두사람을 데리고갔다.

    영후는 집 근처 조그만 가게를 빌려 비디오테잎 대여점을 하고 있었는데 사실 아내의 말처럼 용돈벌이는 커녕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고 있는 중이었다.
    특별한 기술이나 경험 없이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궁리끝에 시작했는데 이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목돈을 들여 구입한 테잎들이 한 달만 지나면 전시용으로 뒤로 밀려나 재고가 되었고, 구색을 갖추자니 새 테잎을 또 들여나야 했다.
    거기다 분실되는 개수도 적지 않았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이럴 때 이종오빠가 찾아온 것이다.

    "자네 나하고 일하나 해보겠나?" 배상무가 소주잔을 건네주며 운을 뗐다.
    "내가 모시고 있는 분이 노원구쪽에 쓰레기진개 회사를 하나 설립하려고 하는데 한다리 끼게"
    앞으로 도봉구에서 노원구가 분리되어 나가게 되어 있고 위에서 이미 내인가가 나 있는 일이라 땅집고 헤엄치기라고 덧붙혀 설명했다.
    영후에게 행운이 찾아 온 것이다.
    유월의 신록은 푸르렀고 영후는 새로운 희망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송파쪽으로 사무실 알아봐!"
    사장과 오전에 노원구청에 다녀온 배상무가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 거리며 영후를 찾았다.
    "망할자식들이 데모하고 지랄하는 통에 뭐하나 해먹기도 힘드니 이거야 원!"
    뭔가 일이 안풀리고 있는 것이다.
    "상이용사회에서 난리를 쳐대는 통에 다된 밥에 재 뿌리게 됐다!!"
    구청장이 시끄러우면 좋지 않다고 우리는 송파구쪽으로 가라고 한단다.
    오늘 내일 하던일이 쉽사리 결말이 나지 않고 하루하루 지연되니 영후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비디오가게를 처분하고 아내가 들고있던 적금도 깨고 해서 회사설립이다 뭐다 해서 투자한 돈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큰일을 앞두고 불평할 수도 없다.

    "평민당 김0완의원이 추천서를 해주기로 해서 김사장이 거기 갔어!"
    오후늦게 배상무는 약주를 조금한 얼굴로 영후를 부르더니 이젠 다 됐으니 염려하지 말라하고는 나갔다.
    다음날 아침신문에 송파쪽 쓰레기진개회사들의 비리에 대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쓰레기 징수료를 회사에서 부당하게 곱절로 거두고 있는 것에 대한 고발과 함께 이미 세군데의 회사대표들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배상무가 영후를 불러 조용하게 설명했다.
    그동안 송파쪽 쓰레기 진개 회사들이 기득권을 주장하면서 우리회사의 인가를 반발하는 통에 일이 지연 되었는데, 이제 몇군데 회사의 인가가 취소되면 그 자리에 우리가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이일은 윗분과 구청장의 작전이니 입조심하고 있으라고 덧붙혔다.

    아내는 열심히 산다. 가여우리 만큼 열심히 산다.
    아침 7곱시까지의 출근을 한번도 지각한 적이 없다.
    영후는 아내의 강한 의지를 존경한다.
    아내가 출근 한 후의 빈 방은 고요하다.
    그 빈방에 누워 영후는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기를 기다린다.
    영후는 기억한다.
    언젠가 을숙도에서 비상하는 철새떼 속에 묻혀 함께 날아오르던 일을.
    그리고 그의 비상을 아내는 그 보다 더 굳게 믿고 있음을.

    {FILE:1}


    을숙도...새...



    눈부신 빛으로
    비상하던 날개들

    영롱한 별 되어
    총총이 박힌 밤

    날아오르던 꿈하나
    쓸쓸히
    별바라기하고 있다.

    모닥불에 커피잔 데우며
    빈 가슴에 불씨하나 지피던 밤
    키 큰 갈잎들이 밤새
    함께 울었다.

    이제

    어느덧 세월가고
    삶은 남루하여 비감한데


    /
    /

    /


    꿈 하나

    을숙도 갈잎 속에
    아직도
    눈 못 감고 누워있다.


    --- 귀빠진날


    전화벨소리에 수화기를 드니 배상무의 목소리다.
    "김사장이 지금 구청장을 만나러 들어갔으니 이따 사무실에서 보자"
    오늘은 무슨 결말이 날 것 같은 예감이다.
    아니나다를까 오후에 사무실에서 만난 김사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청장 얘기로는 시에서 쓰레기처리공단을 발족해서 일괄 관리하게 될거라고 하더군, 전번에 신문에서 떠들고 해서 시의 입장이 곤란해져 그렇게 하기로 했다누만"
    찻잔을 들어 한모금 마시고 난 김사장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되면 인건비 주고 나면 이제 남을게 없대, 사람 구하기 힘든 청소회사에 미련 두지 말고 주차단속회사를 민간업자를 선정해 맡길 예정이니 그걸 해 보라는 구만, 그래서 한번 연구해 봅시다 하고 왔어..." 대충 설명을 마치곤
    "이 나이에 남의 차 끌고 가서 돈벌이하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지?" 하며 영등포로 떠났다.

    몇일 후 배상무는, '신우안전기업 주식회사'로 상호와, 경비용역회사로 업태를 바꾸고, 영등포의 '삼중경비용역회사'의 상무자리에서 '신우안전기업'의 대표이사로 자리를 바꾸었다.

    9.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자 사진관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오전내 암실에서 현상액과 씨름하던 박국도는 작업을 중단했다.
    사진이 매끈하게 빠지지 않는 것이다.
    '사우나나 갔다와야지' 어제 과음한 탓에 머리가 개운치 못하다.
    막 사진관 문을 나서려는데 젊은 부부인 듯한 사람들이 들어선다.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카메라앞의 의자를 가리키며 박국도가 카메라앞으로 다가섰다.
    "저, 실례지만 상의를 할 일이 좀..."
    보기에 깔끔해 보이는 여자가 박국도에게 말을 꺼냈다.
    "네에? 무슨 말씀 이신지요?"
    느닷없는 방문객에 궁금해진 박국도가 되 물었다.
    "사실은 이동네에 치과를 개업하려고 하는데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찾다가,
    이 사진관자리가 탐이 나서 그러니 실례가 아니라면 한번 흥정했으면 합니다" 세련돼 보이는 여자가 먼저 운을 떼었다.
    '치과라 치과, 그러고보니 여기가 치과자리로 안성맞춤인 것 같다.
    "권리금으로 삼천만원 드릴 테니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함께 온 남자가 흥정을 걸어온다.
    박국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그렇지 않아도 이젠 사진관이 지겨워 다른일을 해 볼까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그러시니...허허 이거 참.. 당장 옮길데도 알아봐야 하고, 시설도 새로 해야하고
    한오천은 손에 쥐어야 대책을 세워 볼텐데, 당장은 어렵겠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나섰다. "그럼 입주를 열흘 내로 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오천 드리지요, 계약합시다" 간단하게 흥정이 끝났다.
    박국도는 그들을 데리고 아래층에 있는 영후의 사무실로 와서 계약금을 받고 사진관을 처분했다.
    이렇게 해서 느닷없이 박국도는 영후의 사무실로 나와 부동산 일을 배우게 되었는데,

    석달 정도 지난 어느날,
    박국도는 지하철역이 가까운 건물 2층에 큼지막한 사무실을 얻어 동업하기를 제의했고 영후는<전국부동산네트워크>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걸고 박국도와 동업하게 되었다.

    홍남오는 서둘러 장사를 마쳤다. 오늘부터 운전을 배우기로 작정한 것이다.
    매일 아침저녁 영후에게 의지 하다가 영후가 사무실 일이 바빠지기 시작하자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졌기 때문이다.
    "여형!여형!, 용기도 운전 배울려고 하니 여형이 고생 좀 해줘 나중에 신세 갚을랑께!"
    홍남오가 특유의 전라도 억양으로 영후를 보며 애교를 부렸다.
    그날부터 한강 고수부지 한적한 곳에서, 브레이크를 개조한 차로 운전연습을 하기 시작 해서, 마침내 하나 둘씩 운전면허를 취득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홍남오가 영후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우리가 봉사대를 하나 맹글었는디 여형이 대장을 맡아주랑께!! 곰두리차량봉사대로 이름지었어!"
    홍남오는, 차량을 가지고 운전하는 장애인들이 모여, 장애인들의 수송을 도우는 봉사대를 조직한 것이다.
    "대장은 홍형이 해, 나는 옆에서 보좌관 할테니"
    그러며 영후가 거수경례를 척 올려 부쳤다.
    가슴까지 턱수염을 기른 홍남호가 "그려!그려!'"하며 껄껄거린다.


    10.
    텔레비젼 앞에서 아내가 영후를 부른다.
    <인간시대>라는 특집프로인데 <신망애의 집> 김원휴가 주인공이다.
    세곡동으로 옮긴지 벌써 이년이 다 되어간다.
    30명이나 되는 무의탁장애인들을 돌보는 사랑의 실천자로 김원휴를 소개하고 있다.
    <작은프란치스코의 집> 우총평씨에 이은 화려한 성공이다.
    요령이 있어야 저렇게 성공하는 것이다.
    영후는 우형제가 '요령껏 해야 돼!' 하던 말을 다시 떠올린다.


    11.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을 보면 영후는 가슴이 서늘해 진다.
    TV에서 노래하는 맹인가수를 봐도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 보다 더 기가 막힌다.
    앞을 못 보고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앞이 깜깜하다.
    언젠가 길거리에서 길을 묻는 젊은 맹인을 만난 적이 있는데,
    동행해 주겠다는 영후를 한사코 사양하고 혼자 지팡이로 더듬거리며 정류장으로 갔다.
    자동차배터리액을 만지다 실명했다며 처음엔 몇번 죽을려고 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안마하러 잘 다닌다며 웃어 보였다.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서 영후는,
    그만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빛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혼자서 당당히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에필로그>
    다음해 장애자의날에 우총평씨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고 <병신대장>이라는 자서전을 출간했다.
    그 이야기는 각색되어 MBC TV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드라마로 제작 되어 이희도씨의 주연으로 방영되었다.

    김원휴는 <인간시대>의 방송이 나간후 감동을 받고 찾아와 봉사하던 어느자매와 결혼해 아이를 하나낳고 살다가 성격차이로 이혼했다.

    김봉대의 <해바라기 집>은 연예인들이, <해바라기 집>돕기 프로를 만들어 도와 주어서, 살림이 넉넉해졌다.

    최정환은 장애인 노점상 강제철거에 항거하다가 서초구청 안에서 신나를 끼얹고 분신자살했다.
    이사건으로 연세대학생들이 몰려나와 길거리에서 그의 노제를 치루었고 경찰과 대치끝에 열사로 추대되어 용인 '카톨릭공원 묘지'에 안장되어졌다.

    홍남오는 전국에 26개의 지부를 갖춘 <곰두리봉사대>의 총대장으로,
    보라매공원안에 있는 '장애인 재활협회'와 연계하여 활발한 봉사활동을 하고있다.


    1999년 8월 24일 삼복에 여영훈 씀

    ~~~~~~~~~~~~~~~~~~~~~~~~~~~~~~~~~~~~~~~~~~~~~~~~~~~~

    (KBS TV '피플 세상속으로'-119회(2002/12/26)에 이 글속의 인물
    우총평씨가 나옵니다. 다시보기 56K로 보세요)--->

    http://bbs1.kbs.co.kr/ezboard.cgi?db=peoplevod&action=read&dbf=117&page=0&depth=1

    <신문기사 한토막>
    장애는 불편할 뿐… 희망 꺾을 수는 없죠”

    “사람들은 나를 보고 ‘병신대장’이라고 부르지만 전혀 개의치 않아요.
    신체적 장애는 단지 불편할 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들은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고 헬렌 켈러처럼 인생을 승리자로 살아야 해요.”
    33살 때 버거병(폐쇄성 혈전혈관염)이 발병, 이혼과 함께 두 다리를 대퇴부까지
    절단한 지체 1급 장애인이면서도 경기 하남 등 전국 5곳에 장애인을 위한 보금자리를
    직접 지어 관계기관에 기증하거나 운영 중인 우총평(67·사진)씨.

    그는 자신도 중증장애인이면서 다른 장애인을 위해 이 같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 같은 헌신적인 삶을 인정받아 1991년 이후 꾸준히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후보에 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도로부터 제6회 ‘경기도장애극복상’을 수상했다.

    서울 출신인 우씨는 버거병이 발병하기 전까지 부인과 딸을 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러나 버거병이 생겨 직장을 그만두고 7번에 걸쳐 두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으면서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은 깨졌다.
    이후 그는 한동안 노숙인으로 지내며 구걸과 장사를 해 간신히 월세방을 마련했다.
    ‘죽지 못해 살기 위해’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던 그는 어느날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친 정신지체 장애인과 불우노인 등을 보고 ‘삶의 귀중함과 심오함’을 깨달았다.
    “이때 그들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길거리에서 구걸해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는 평범한 장애인에 지나지 않았을 거예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 인생은 송두리째
    변해 버렸어요. 비록 두 다리는 없어도 뜨거운 가슴과 연민,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우씨는 “당시 나는 세상을 큰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깨닫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린 뒤 이들을 내 집으로 데리고 와 식사를 대접하고 하룻밤을 자고
    가도록 권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는 이 일이 계기가 돼 ‘중증장애인의 대부’가 됐다.
    “처음 두 명에 불과하던 정신지체 장애인과 불우노인이 소문을 듣고
    한두 명씩 내집으로 찾아 오는 거예요" -이하 생략





    <아내에게 써 준 통과된 대학원 보건행정학 석사 졸업논문> ↓



    碩士學位 請求論文
    指導敎授 姜 太 勳

    障碍人 福祉政策의 改善 方案에 관한 硏究
    -障碍人 福祉關聯法을 中心으로-

    障碍人 福祉政策의 改善 方案에 관한 硏究
    A Study on the Improvement Methods
    of the Welfare Policy for the Handicappied

    이 論文을 碩士學位 論文으로 提出함

    199X年 8月X日

    <國文要約>

    障碍人 福祉政策의 改善 方案에
    관한 硏究
    -障碍人 福祉關聯法을 中心으로-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 관련 법제는 장애인 복지법, 장애인 고용 촉진 등에 관한 법률 특수교육 진흥법,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등으로 대표된다
    장애인 복지 정책의 수립과 시행의 근거가 되는 장애인 복지법은 종합법으로서의 형태와 기본법의 형태가 갖추어져 있지 아니하고 각분야별 관련법들이 내용적으로 통일성을 이루지 못하므로 장애인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종합정책이 나올수 없을 뿐 아니라 장애인 복지법을 근거로 종합정책이 나온다고 하여도 관련법의 통일성이 없기 때문에 정책의 시행단계에서 각 부처간의 협력체계를 이룰 수 없어서 종합정책의 실천이 어렵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 정책의 현실이다. 이에 본 논문은 장애인 복지정책의 수립과 효율적인 시행을 위한 기초가 되는 장애인 복지관련법과 법제에 관해서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 개선안을 연구하였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의 법·제도는 꾸준히 발전하여 왔다고 볼수 있지만 법·제도의 골격에 관련된 구조적인 문제점과 내용면에서 열악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를 살펴보면
    1. 장애인 복지 관련법 체계가 사안별, 개별적 체계로 나누어져 있어 하나의 복지정책 기조를 제시하는 틀로 작용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이는 정부의 장애인 복지 중심의 방향이 뚜렷이 설정되어야 이에 따른 공공부문과 민간 부분이 동일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협력할 수 있게 되는데, 법체계가 분절화 됨으로서 복지부 주관의 사회복지 서비스, 노동부 주관의 고용서비스, 교육부 주관의 특수 교육 서비스 등이 상호 유기적으로 종적으로 연결되어 기능하는데 취약하다. 그러므로 이들 관련 기능들이 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일관적인 법체계를 가진 장애인 복지 관련 종합법의 제정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2. 장애인에 대한 복지 정책은 장애인의 인권과 주체성을 기본이념으로 수립되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의 인권에 바탕을 둔 강력한 장애인 법이 제정되어져야 할 것이다. 1990년에 제정된 미국 장애인법은, 인권에 바탕을 두고 장애인의 기회균등을 저해하는 차별행위를 아주 구체적인 사항까지 금지한 법으로, 우리나라도 미국 장애인법(ADA)의 장애인 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인 차별금지법리를 가능한 도입하여야 할 것이다. 특이 미국 장애인법상의 적절한 배려(Reasonable Accommodation) 와 긍정적 조치(Affirmative Action) 개념의 도입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3. 장애인의 사회 통합과 정상화를 위하여 장애인 관련 모든 법령은 정상화 이념이 구체화되도록 정비되고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통합 교육, 일반직장에의 취업은 사회통합을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4. 장애인의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 권리의 회복을 위한 방안이 연구되어 법제화 되어야 할 것이다. 권리의 보장은 실체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절차법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5.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주체적으로 생활하고 사회의 각 부문에 참여하여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장애인 복지 정책의 중심이 시설 중심정책에서 인권 중심정책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모든 장애인 복지 관련 법령의 개선 정비의 방향을 탈 시설, 인권 중심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요약하면 장애인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과 동일한 권리와 의무가 있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 복지 정책은 장애인의 인권을 기본 이념으로 수립 시행되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 현재의 장애인 관련법과 장애인 복지법을 개정 통합한 장애인 복지 종합법의 제정이 시급한 과제라고 여겨진다.

    目 次

    國文要約

    表 目 次

    第 1 章 序 論
    第 1 節 硏究의 目的
    第 2 節 硏究의 範圍와 方法

    第 2 章 障碍人 福祉政策의 理論的 背景
    第 1 節 障碍人의 槪念과 分類
    1. 障碍人의 槪念
    2. 障碍人의 特性
    3. 障碍發生 要因
    4. 障碍人의 分類
    第 2 節 障碍人 福祉의 槪念 및 目標
    第 3 節 障碍人의 權利와 人權憲章

    第 3 章 障碍人 福祉政策과 現況
    第 1 節 障碍人 福祉體系
    第 2 節 障碍人 福祉制度의 實態
    第 3 節 障碍人 福祉事業現況

    第 4 章 障碍人 福祉關聯法 分析
    第 1 節 障碍人 福祉關聯 特別法
    1. 障碍人福祉法
    2. 特殊敎育 振興法
    3. 障碍人 雇用 促進 등에 관한 法律
    4. 障碍人, 老人, 姙産婦 등의 便宜 增進 保障에 관한 法律
    第 2 節 障碍人 福祉關聯 一般法

    第 5 章 障碍人 福祉關聯法 改善方案
    第 1 節 障碍人 福祉關聯法 改善의 基本方向
    第 2 節 障碍人 福祉綜合法 制定의 必要性
    第 1 節 障碍人 福祉綜合法 構成安

    第 6 章 結 論

    參考文獻

    ABSTRACT


    表 目 次

    [표 3- 1] 통합적 장애체계에 대처하는 장애인 복지 체계 ( )
    [표 3- 2] 등록 장애인의 변화 ( )
    [표 3- 3] 등급별 등록장애 현황 ( )
    [표 3- 4] 장애인 복지사업과 그 대상자 ( )
    [표 4- 1] 직업 재활 관련 전문 인력 배치 실태 ( )
    [표 4- 2] 의료 관련 법률 ( )
    [표 4- 3] 교육 관련 법률 ( )
    [표 4- 4] 직업 관련 법률 ( )
    [표 4- 5] 소득 보장 관련 법률 ( )
    [표 4- 6] 건축 관련 법률 ( )
    [표 4- 7] 이동 관련 법률 ( )
    [표 4- 8] 주택 관련 법률 ( )
    [표 4- 9] 통신 시설 관련 법률 ( )
    [표 4-10] 문화 환경 등에 관련 법률 ( )
    [표 5- 1] 장애인 복지관련법 체계 ( )
    [표 5- 2] 장애인 복지종합법(안)의 구조와 요지 ( )

    第 1 章 序 論

    第 1 節 硏究의 目的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사회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시책을 강구할 의무가 있다.
    장애인도 국민의 일원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이며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1975년 제 20차 UN 총회에서 채택된 장애인 권리선언 제 13조에는 "장애인은 인간으로서 존엄이 존중되는 권리를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다. 장애인은 장애의 원인, 등질 및 정도에 불구하고 같은 연령의 시민과 똑같은 기본적 권리를 가지며, 이것은 첫째로 가능한 보통의 생활과 충분히 충족된 생활을 보낼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1976년 개최된 제 13차 UN 총회에서 1981년을 세계 장애인의 해로 정하고 주제를 <완전 참여와 평등> 으로 정했다. 이 주제야말로 장애인 복지의 개념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인류의 긴 역사속에서 장애인은 사회의 편견과 멸시, 차별속에서 살아왔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속담이나 욕설 중 많은 부분이 장애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멸시, 차별이 얼마나 심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아직도 사회의 잔존하고 있는 비인격적인 시각으로부터 장애인의 인권 회복과 인간 존엄성의 회복이 장애인복지의 시급한 과제이다.
    우리 헌법 제 35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의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정책은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제정된 이후 관련 법령의 제정과 개정, 예산의 확대를 거쳐서 꾸준히 성장해 왔다. 이러한 사실은 1987년 장애인 등록 사업의 실시, 1989년의 '심신장애자복지법'의 '장애인복지법'으로의 개정, 1989년의 생계보조수당의 지급, 1990년 '장애인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의 제정과 의무고용제도의 실시, 1994년 '특수교육진흥법'의 개정과 특수교육 기회의 확대, 1997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 제정 등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보건복지부, 노동부, 교육부가 장애인의 복지전반, 고용, 교육 등에 관한 포괄적인 계획을 '장애인복지 발전 5개년 계획'으로 제시한 바가 있다.

    IMF 시기에 복지 전반이 소강 국면을 맞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예산 감축과 구조 조정 등으로 대표되는 IMF 프로그램이 사회보장 전반적인 면에서 취약한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의 여건을 감안할 때 가혹한 결과들이 예상된다. 특히 장애인 복지 분야의 경우에도 정부의 생계지원, 정부의 예산지원에 의한 사회복지 서비스, 일반 시민들의 후원금, 기업 복지 재단들의 사회복지 지원금 등에 의존해서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인 복지를 포함하는 사회복지 전반에 관련된 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있어서는 이러한 극심한 어려움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새정부의 튼튼한 의지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전반적인 기조위에서 IMF 시대라는 경제적 어려움의 상황과 정권 교체를 통한 새정부의 출발이라는 상황을 고려하여, 장애인 복지정책의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의 집행을 위한 문제점 검토와 개선방안이 제시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정책의 현황과 장애인 복지 관련법의 실태를 살펴보고 이에 기반하여 장애인 복지관련법들이 일관성을 가지고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개선방안을 모색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第 2 節 硏究의 範圍와 方法

    1. 硏究의 範圍
    `
    장애인 복지는 장애인구의 증가와 장애인의 복지욕구증대 및 장애인의 인권을 위한 다양한 요구속에서 복지 전반에 걸친 질의 향상과 강화에 대한 적극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요구되는바 그 골격을 이루는 장애인 복지 관련법과 법제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2. 硏究의 方法

    장애인은 신체적 정신적 특성으로 인하여 정상인보다 사회적으로 많은 불이익을 받고 있으므로, 장애인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할 당위성에 따라 규범적이고 실천적인 연구 방법을 채택하였는바 각종 장애인 복지 관련 자료와 문헌을 토대로 장애인 복지관련법과 법제를 분석하고 장애인 복지 관련 학술지, 단행본, 관련 논문 등을 보조자료로 활용하였다.

    第 2 長 障碍人 福祉政策의 理論的 背景

    第 1 節 障碍人의 槪念과 分類

    1. 障碍人의 槪念

    장애인에 대한 개념을 매우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장애인의 연령이나 종류, 장애의 정도와 그 판별방법, 장애인에 대한 판별시각 등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고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진다.
    국제연합의 결의에 의한 "장애인의 권리 선언"에서는 장애인은 선천적이든 아니든 불구하고 신체적 또는 정신적 능력의 결여로 인하여 일상의 개인 또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을 확보하는데 스스로를 완전 또는 부분적으로 행할 수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ILO 제 99호 "신체장애자의 직업갱생에 관한 권고"에서는 신체장애인이란 신체적 또는 정신적 손상의 결과 적당한 직업에 취업하거나 그것을 계속할 가망이 감퇴하고 있는 자를 말하고 있다
    또한 법률적인 개념으로서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법 제2조에서는 장애인을 지체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또는 정신지체 등 정신적 결함으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의 기준이 과거에는 신체적·정신적 결함의 정도에 두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생활의 불편정도에 두고 있다. 그리고 장애인의 개념은 인간 개체의 존엄성의 원칙에 입각해야 하며 일상 사회생활에서 비장애인과 똑같이 살아 갈 수 있도록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국민 중에서 가장 높은 대상이며 사회복지 분야 중에서 핵심적이며 사회적 욕구(Need)를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장애인복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세계보건기구 (WHO)는 1980년 장애의 계층적 개념을 제창하면서 국제장애 분류에 있어서 장애의 계층적 분화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① 심신장애(impairment) : 기능의 감소를 가져다 준 영구적 또는 일시적인 병리적 상태를 말한다.
    ② 능력장애(disability) : 생산적인 일상생활을 하기 위한 기능적 능력의 감소를 말한다. 이것은 정신적·신체적 손상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그 상태에 대한 그 개인의 적응 결과이기도 한다.
    ③ 사회적 불리(handicap) : 선천적 또는 노령, 질병, 사고 등으로 인해 그 신체적·정신적 상태가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손상되어 그 결과 독립성, 교육, 취직 등이 저해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권도용은 장애를 다음과 같이 분류하여 정의를 내리고 있다.
    ① 신체장애(imparirment) : 생리학적인 신체구성요소의 손상 또는 손실 때문에 발생하는 신체의 형태 (신체구조)와 신체기능의 장애를 의미한다.
    ② 의식장애(despair) : 신체장애가 원인이 되어 삼리적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의식을 구성하고 있는 지능적 인식(감각, 지각, 인지 등의 연계적 통합), 본능적 욕구 및 이성적 선택(사고, 의지, 판단 등의 상호 관계적 통합체)등에 이상상태가 발생하여 주체적 태도를 산출해 내는 구성요소간의 동기 지향적 과정을 성립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③ 능력장애(disability): 신체장애와 의식장애가 통합되어서 주체적 행동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④ 사회적 장애: 능력장애를 가진 장애인에게 극복하기 어려운 사회환경이 되는 장애로서 물리적 사회환경장애, 문화적 사회환경장애, 사회심리적 사회환경장애 등을 말한다.
    ⑤ 사회적 불리(handicap): 개인적 장애(능력장애=신체장애+의식장애)와 사회적 장애(물리적 장애+문화적 장애+사회심리적 장애)가 통합된 형태를 말한다.

    2. 障碍人의 特性

    장애인에게는 일반적으로 비장애인과 공용으로 가지는 사회환경이나 심리외에 장애인만이 독특하게 가지게 되는 사회환경과 자아의식이 있다.
    이것은 장애인들의 사회적 적응이나 정서적 적응의 상태, 지능이나 경험의 구조에서 나타나며 대인관계에서도 특수한 경향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장애인의 자아의식 및 사회환경적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장애인복지정책을 마련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가. 사회환경적 특성

    1) 생활환경
    장애인을 위한 주거, 교통, 통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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