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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투병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0-09-09 22:12 조회3,501회 댓글0건

    본문

    살다 어느 때 벼랑 끝에서,
    모래탑 무너지듯 살아온 날들 허물어져 내리고
    손 내밀 사람 하나 없는 참담한 시각에
    火印처럼 지워지지 않는
    가슴속 깊이 후회로 피는 꽃 한송이。

    살면서 배운 핏빛 꽃이름
    - 나는 사랑할 줄 몰랐다.


    벼랑끝에서1/영후


    2010,9,9 福如海
    http://blog.naver.com/natto114


    <아내야, 내 아내야!>

    1.
    아내가 생사의 기로에 섰다.
    아내의 셋째언니가 폐렴으로 입원한 목포의 한국병원 병실을 일주일간 하루도 빼지않고 병문안을 하더니 언니가 퇴원한 바로 다음날 39℃의 고열이 나서 언니가 누워있던 바로 그병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하기 전에 39℃의 고열과 오한으로 밤새 앓던 끝에 언니와 똑같은 폐렴이 전염된 것으로 알고 입원한 것이다.

    양쪽 폐 1/3이 염증으로 차올라 숨이 가빠 산소호흡기를 코에 달고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생사의 기로에 섰다.
    절반만 더 염증이 차오르면 중환자실로 옮겨야한다는 주치의의 말에 눈앞이 아찔했는데 3일 후 천만다행스럽게도 열이 더 오르지 않고 조금씩 차도가 보여 안심이 된다.
    아내의 언니가 입원한 병실에 병문안 갈 당시 영후는 마스크를 꼭 쓰도록 신신당부를 하였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세균성폐렴은 전염이 안된다며 당부를 무시했다.
    자주 기침을 하는 언니와 서너시간씩 마주 앉아 있는 상황에서 세균성폐렴이라 할지라도 기침할 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침이 직접 체내로 전염이 되는 것인데 아내는 간단한 예방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세균배양검사만 일주일이 걸리는 폐렴일 경우 결핵성인지 바이러스성인지 어떤 종류의 세균인지도 모르고 항생제를 투여했을 때 항생제 내성이 생겨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어 나중에 균의 종류가 확인된다하더라도 환자는 이미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아내의 경우 백혈구수치가 일시적으로 2900까지 감소하고 다시 고열과 양쪽 폐의 1/3씩이나 염증이 차오르는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의사의 항생제처방에만 의존할 수 없어 입원한 날부터 영후는 AHCC 20미리그람씩 하루 4포 아내에게 복용시켜 백혈구 호중구의 세포수를 늘려 면역력을 증강시켜 주었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복용한 다음날 부터 열이 내리면서 백혈구 수치가 정상이 되고 3일 후에는 염증의 진행이 정지되고 X선 촬영사진상 염증이 조금씩 가라 앉아 안심하였는데 입원 5일째 다시 39도의 고열이 나서 중환자실로 옮겨야 하는 위급한 상황이 닥쳤다.
    폐렴에는 자신있다던 강동구 과장이 중환자실로 올라가야겠다며 보호자를 찾았다.
    중환자실에 올라가면 어떻게 치료할 지 무슨 다른 방도가 있느냐는 영후의 질문에 다른 항생제를 써보겠다고 과장이 짧게 대답했다.
    난감한 상황에서 강동구과장의 대답을 들으며 영후는 왜 강남구가 아니고 강동군가 ? 하는 엉뚱한 생각이 잠시 들었다. 사람에게는 본능이란게 있어서 강동구라는 이름이 영후에게는 신뢰가 가지 않았는지 순간적으로 '앰블란스를 내주세요. 서울대학병원으로 가야겠습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지금 환자상태로는 가는 도중에 위험합니다. 중환자실에서 며칠 더 치료를 해보는게 어떻겠습니까?"
    강동구과장이 만류하며 영후의 말을 덮었다.
    " 아니오. 가다가 죽더라도 지금 서울로 가야겠으니 앰블란스를 대기시켜 주세요"
    어제 밤잠도 설치고 아내가 없는 통에 때거리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 피곤한 상태에서 사실 한밤중에 서울로 간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인지도 몰랐지만 알 수 없는 위기감을 느낀 영후는 본능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강동구과장이 별 예민한 보호자 다보겠다며 떨떠름해하며 앰블란스를 준비시켜 주었다.

    "삐뽀삐뽀 삐뽀삐뽀" 구급차 싸이렌과 경광등을 번쩍이며 앰블란스는 밤 11시에 한국병원을 출발하여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뒷편의 간이침대에 산소마스크를 하고 있는 아내의 곁에서 영후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얼음팩을 수시로 갈아주며 아내의 체온이 더 오르지 않기를 기도하며 빨리 서울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평소에 구급차를 보면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한쪽으로 비켜 주행할 길을 틔워주던 영후로서는 이렇게 캄캄한 밤중에 구급차를 타고 마음 졸이며 고속도로를 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평소에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감시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보통 130-150의 고속으로 달리던 영후는 구급차의 110km의 정속주행에 가슴이 졸아들기 시작했다. "허~~~ 이러다 5시간도 더 걸리겠소. 제발 조금만 더 빨리 갑시다 기사양반"
    참다 못한 영후가 조금 더 밟으라고 구급차 운전기사에게 채근을 해도 들은둥 만둥 구급차의 속도는 더 이상 빨라지지 않았다. 규정속도를 초과하면 위험해서 안된다는게 돌아온 시큰둥한 답변이었다.

    새벽 2시.
    목포를 떠나 이제 겨우 대전근처를 지나는 구급차속에서 아내는 고열에 수시로 얼음팩을 갈아주지 않으면 안되는 불안한 상태였다.
    캄캄한 밤의 고속도로를 구급차 뒤 유리창을 통해 보면서
    "조금만 참아 이제 두시간만 더가면 서울이야" 아내를 안정시키던 영후는 문득 오래전 중동의 어느사막위를 달리던 스리쿼터 뒤에서 바라보던 사막이 떠올랐다.
    그때는 딸린 가족이 없는 총각시절이었다. 사막 어디에 쓰러져도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었던 혼자이던 그때.
    정든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이렇게 준비도 없이 훌쩍 떠날지도 모르는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다.
    영후는 가슴이 북받쳐 올라 허리를 곧추펴며 깊게 숨을 들이 마셨다.
    '가자, 가다가 죽는다해도 가자, 아내야 내가 있잖아, 내가 꼭 살리고 말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영후는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다짐하며 아내의 두 손을 꼭 쥐었다.

    중동에서 쓰러져 후송되어 온 영후가 아내를 처음 만났던 서울 강동구의 어느 곳.
    하필이면 아내의 담당의사가 강동구가 뭐냐 강남구도 아니고......영후는 애꿎게도 한국병원 강동구과장의 이름을 다시 떠올리며 강동구 둔촌동성당에서 결혼식날 "내가 있잖아, 걱정하지마"하며 손을 꼭 쥐던 아내가 생각났다.
    지금 아내는 훌쩍 떠나서는 절대로 안되는 사람이었다.

    영후는 아내를 떠나보낼 준비는 커녕 생각한 적도 없었다.
    누군들 이별이 이렇게 갑작스레 찾아오지 이별을 준비한 후 떠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마는 갑작스레 속수무책으로 이별했을 때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할지 영후는 도저히 가늠 할 수도 없었다.

    아내의 상태를 살피면서 조바심하는 사이 다행히도 앰블란스는 혜화동 고개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제 10여분후면 도착이다.
    영후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아내를 간호하느라 좁은 차 뒷자리에서 5시간이나 구부리고 있던 허리를 폈다.

    잠시후 경광등을 번쩍거리며 구급차가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서둘러 아내를 응급실로 옮기고나니 응급실 담당 간호사가 휠체어를 하나 내주면서 앉아서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아니, 산소마스크를 해야 할 중환자를 휠체어에 앉아 기다리라는 말입니까?"
    어이없어 되묻는 영후의 말에 간호사가 "네"하고 덤덤하게 대구했다.
    "이런 말도 안돼, 그래도 서울 대학교병원인데, 이럴 수가 있어요?" 다급해진 영후가 간호사에게 애걸하듯 되물었다.
    "언제까지 휠체어에서 대기해야 합니까?"
    "베드가 다차서 어쩔 수 없어요, 다른 환자분들도 다 저렇게 휠체어에 앉아 기다리고 있어요"
    간호사가 다른 방도가 없다며 휠체어에 앉아 있는 다른 환자들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조금 신경질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이런! 이런! 명 짧은 사람은 진찰 받기도 전에 죽겠네요. 어떻게 이럴수가?"
    영후는 어이가 없어 한숨쉬듯 내뱉고는 다시 돌아갈려고 시동을 걸고 있는 구급차기사를 붙잡았다.
    "기사양반, 여기는 환자가 꽉 차서 도저히 안되겠소, 수고스럽지만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갑시다."
    시동을 걸던 구급차기사가 "그러면 추가요금을 더 주셔야합니다"하며 운전석에서 내려 아내를 다시 간이침대에 눕혀 뒷자리에 실어올렸다.

    영후는 서울시내 비상연락전화번호로 가까운 서울 백병원 응급실에 베드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백병원쪽으로 차를 돌렸다.
    미리 연락을 해둔 백병원응급실도 환자들이 북적거리긴 매 일반이었는데 다행히도 응급실베드 하나가 여유가 있어 아내를 옮겨눕혀 놓고 영후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응급실 베드에서 산소마스크를 한채 눕혀 놓은 아내곁에서 얼마나 긴장을 하며 서울까지 왔던지 피곤한지도 몰랐다.

    그런데 지난밤 새벽부터 혀밑에 굵은 핏물주머니가 맻히는가 싶더니 이제 긴장이 조금 풀리자 입안에서 그냥 터져버리고 말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막상 오전에 음식을 먹을려니 혀밑의 엄청난 통증으로 음식물을 먹을 수도 삼킬수도 없었다.
    '저사람이 물 한모금 제대로 먹지 못하고 누워있는데 차라리 잘되었다' 영후는 아내의 처지가 딱하고 눈물이 나서 음식먹는 걸 체념하고 두유한통을 사서 빨대로 조금씩 빨아서 목구멍으로 넘겼다.
    하루 왼종일 두유 서너통을 빨대로 빨아넘기며 백병원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죽을 사람은 어째도 죽고 살 사람은 어째도 산다던가?
    아내가 살 복이 있었던지 백병원부원장께서 아내의 CT를 보더니 응급으로 조직검사를 지시했다.
    보호자를 불러 면담한 부원장은 "일반적인 폐렴증세와는 달라보이니 응급으로 흉부절개해서 조직검사를 해야 합니다"하며 수술동의를 구했다.
    부원장의 관록있는 표정과 어투에 신뢰가 간 영후는 내심 의사를 잘만난 것 같은 예감에 선뜻 동의했다.
    그러나 다음날 수술 후 부원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이 환자는 지금 수술하지 않았으면 이 삼일도 못넘기고 사망했을 환자였습니다. 양쪽 폐 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치료를 해도 이삼개월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영후에게 "악성 폐선암 4기말 B 상태입니다"하며 측은한 눈빛으로 영후를 바라보았다.
    청천벽력같은 의사의 시한부선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영후는 할말을 잊었다.

    중환자실로 옮겨간 아내의 얼굴을 보는 시각은 하루 두번 오전 11시와 오후 7시. 30분간의 짧은 면회가 전부였다.
    중환자 보호자실에서 입고 간 옷 그대로 아내와 영후의 병원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2

    며칠 후 목포에서 처형들이 올라왔다.
    의사의 진단을 설명들은 처형들은 중환자실 복도에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막내야~~ 어쩌까..흐흑"하며 오열했다.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밤새 2-3개월 시한부 삶이라니? 언니들의 슬픔도 영후와 똑같았다.
    "여서방, 자네가 힘내야 해, 자네가 약해지면 막내는 죽네, 여서방 자네라도 끼니 굶지말고 힘내소, 이거는 막내 병원비에 보태쓰소"하며 처형들이 며칠 두유로 연명하는 영후에게 일백만원 짜리 수표한장을 내밀었다.

    "이제 고향 언니들 곁에와서 편하다고 하더니 ...막내야,, 우리막내 불쌍해서 어째야쓰까?"
    어릴적에 부모를 여의고 혼자 상경해서 대학병원에서 명예퇴직시까지 서울생활을 한 막내가 언니들 눈에는 측은하기 그지 없어보인 것이었다..

    더구나 평생을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막내여서 건강만큼은 자기가 알아서 하려니하고 아무 염려도 하지 않던 막내였던터라 언니들이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나도 어이없고 황당해서 사실같지 않아요" 꼭 꿈속의 일같이만 느껴지는 현실앞에 영후는 몽롱한 느낌이었다.
    일년에 한번씩 위와 대장내시경을 규칙적으로 받고 건강검진을 받아왔는데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일반적인 폐암과 달리 폐선암의 경우는 정밀하게 CT상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부원장이 폐의 선을 따라 구름처럼 퍼지기 때문에 일반 종양처럼 X선 사진으로는 판별이 안되는 병이라고 일러주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내가 폐선암? 그것도 말기중의 말기?

    한가지 다행한 일은 아무 곳에도 전이가 되지 않고 오직 양쪽 폐안에서만 암이 퍼져있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폐암말기환자의 경우 뇌와 간 임파선등에 전이가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내는 다른 장기에에는 전혀 전이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중환자실에서 가슴옆에 튜브를 박은채 산소마스크를 쓰고 누워있는 아내를 볼 때 마다 영후는 가슴이 오그라 들었다.
    중환자보호자실에서 대기하다가 하루 두번 면회때 잠시 보는 것외에 영후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병원옥상 휴게실에 잠간씩 올라가서 멍하게 하늘을 쳐다보다가 그것도 답답해지자 영후는 가까운 명동성당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명동성당아래 평화회관마당의 성모마리아상은 아내와 영후가 처음 데이트를 약속한 자리였는데 삼십년이 다되어가는 지금 아내를 중환자실에 눕혀놓고 혼자 찾아오게 될 줄이야!
    영후는 가슴이 슬픔으로 꽉차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성모마리아상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시 아내와 같이 이자리에 올 수 있게 도와 주십시요. 어머니"
    영후는 아내와 두손 잡고 이자리에 꼭 다시 오게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기도했다.
    불과 보름전에도 아파트 뒤 동산을 손잡고 올라다니지 않았던가?
    목포 하당근처의 바닷가와 갓바위를 아내는 손을 잡은 채 어린아이처럼 따라 걷지 않았던가?
    그 생각을 하자 슬픔이 더욱 북받쳐 올라 영후는 킁킁 소리내며 울기 시작했다.
    마침 해질녘이고 주변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별 눈치없이 울어도 되는 상황이기도 해서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한참 울기 시작했다.

    아내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아내는 영후와 구일기도를 하자고 했고 영후는 구일기도가 무슨기도인지도 모른채 그러자고 약속했었는데 아내는 구일기도책을 두권사서 한권 나눠주고는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었다.

    그리고 하루도 빼먹지않고 54일씩 3번 그러니까 162일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했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영후로서는 힘들었던 기도의 날들이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서 삼십년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도 한번도 하지 않던 그 구일기도가 문득 생각난 것이다.
    그것도 아내와 함께 할 수 없는 지금.

    영후는 명동성당 판매소로 가서 구일기도책과 손목에 팔찌처럼 차는 묵주를 하나 샀다.
    그리고 다시 그자리로 돌아와서 구일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삼십년이 다되어가는 지금 영후에게 그 구일기도를 다시 하라고 하시는 뜻인 것처럼 느껴진 때문이었다.

    병원에 묶여 있는 지금으로서는 딱히 시간을 보낼 다른 일도 없어서 영후는 구일기도를 다시 시작한 것이기도 했는데 사실은 아내를 살릴려는 간절한 바램이 기도를 시작하게 한 것이 틀림없었다.

    명동에는 젊고 싱싱한 커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거리를 활보한다.
    저들에게는 넘치는 활력이 있고 요즘처럼 모든 것이 편리한 세상에서 젊음을 구가하기에 명동처럼 좋은 데가 없었다.
    명동에는 없는 것이 없어 보였다.
    롯데백화점과 명동성당사이의 번화가는 젊은 청춘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활기찬 그들의 틈에서 영후는 왜소해지고 초라해진 중늙은이인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아내마저 병원에 눕힌채 홀로인 영후에게, 눈부신 조명과 휘황찬란한 명동의 현란함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영후가 사는 세상과는 맞지 않는 동떨어진 곳에 와 있는 자신을 느끼게 하곤 했다.
    명동거리에서 바라보이는 백병원안 어느 곳에 아내는 누워있는 것이다.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상태로 아니 이삼개월을 넘기지 못한다는 의사의 선고속에 아내는 가슴옆구리에 핏물이 흘러나오는 튜브를 꽂은 채 고통속에서 산소마스크를 한채 누워서 투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수많은 젊은이들의 건강함이 부러웠다.
    이렇게 많은 건강한 사람들 속에 아내는 아니 우리는 이제 끼이지 못하고 도시의 한구석으로 밀려나 난파선처럼 둥둥 떠 다니고 있는 것이다.

    롯데백화점과 이어지는 명동으로 통하는 롯데백화점 지하 을지로 입구역에 잠시만 서있어도 밀려오는 수많은 인파에 부딪쳐 넘어질 지경이었다.
    수없이 밀려들어오는 젊은이들. 영후와는 아무 상관없어도 제각각의 삶을 구가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모두들 활기차고 밝은 표정으로 하루의 주어진 시각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지금 서서 그들을 바라보는 영후에게는 지금 이자리가 어울리지 않는 장소임이 틀림없었다.


    오지마라
    그리운 이름 호명하던 서러운 날들 이제 다시 오지마라
    불러도 대답없던 이름들
    이제는 정녕 잊었노라 불러도 오지마라.

    가지마라
    그리운 마음 헤매이다 가닿던 곳 이제 가지마라.
    그 서러운 빈 곳에
    이제 다시는 가지마라.

    꽃도 지는 때를 알고 꽃답게 진다는데
    그리움 접어서 허공에 날리던 쓸쓸한 연가 이제 그치고
    꽃다이 져가는 청춘에게 결코 눈물 보이지마라.

    무심으로 가는 길목에서
    살아온 날들과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에게 경례!
    허공중에 피어오르다 흩어지는 담배연기에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落花같은
    서러운 내 청춘에게도 경례!


    - 벼랑 끝에서2/영후


    영후가 있어야 할 자리는 아내가 누워있는 중환자실 옆 중환자 보호자실이었다.
    중환자보호자실에는 나말고도 대여섯명의 보호자들이 한방에서 같이 기숙하고 있었는데 모두들 가슴 한쪽이 뻥 뚫려 동병상린의 애절함을 느끼게 하였다.
    약 2주간을 중환자실에서 보낸 아내가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의 무거운 분위기가 견디기 힘든다고 아내가 일반병실로 옮기기를 자원한 것이었다.
    아직 움직일 수 없는 아내의 병상옆에서 밤새 기침하며 가래를 뱉어내는 아내를 뜬눈으로 간병하고는 6시 아침식사시간에 산소마스크밑으로 미음을 한 숟갈 떠먹이다가 영후는 하복부에 통증을 느껴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병원생활이 몸에 무리했는지 통증이 간헐적으로 오기 시작했다.
    작년에 신장내의 결석을 체외충격기로 파쇄하는 시술을 한 후 아주 조그마한 결석하나가 제거되지 않고 남아있기는 했지만 지금 느닷없이 통증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내는 가슴옆에 튜브를 꽂은 채 비타민과 아미노산, 항생제주사 링거를 팔에 꽂고 있어서 잠시도 일어날 수 없는 상태였다.
    38.5도의 열이 계속되고 있어서 등쪽에 얼음주머니를 대고 체온조절을 하면서 누워있어야하는 상태였다.
    대 소변을 받아내는 것이 제일 중요한 영후의 일이었다.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영후에게 통증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쌓여 몸이 고장이 난 것인지 진단을 받아 치료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비뇨기과는 백병원이나 대학병원보다 영동사거리에 있는 자이 비뇨기과가 시설도 좋고 빠른 진료와 검사를 할 수 있어서 다음날 오전부터 간병인을 한사람 아내곁에 붙혀놓고 영후는 자이비뇨기과로 검사를 받으러 갔다.
    "전립선에 염증이 있습니다. 크기도 많이 커져 있구요. 나이들면 50%이상이 걸리는 흔한 증상입니다." 인상이 넉넉해 보이는 의사가 큰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검사결과를 일러주었다.
    "수술해야합니까?" 다급한 심정으로 묻는 영후에게 의사는 " 아까운 나이라 아직 수술보다는 약으로 치료해 보십시다. 그리고 오늘 오신 김에 전립선 온열시술도 받고 가세요" 하며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예, 그러지요" 다행이다싶어서 영후는 의사의 지시대로 온열시술실로 가서 시술을 받았는데, 요도속으로 가는 열선을 집어 넣어 온도를 올린 후 한시간이나 움직이면 안되는 시술이었는데, 온열시술이라는 편해보이는 느낌과는 달리 하복부쪽에서 참기 힘든 난생 처음 겪어보는 통증이 밀려왔다.

    오전에 방광내시경을 할 때도 요도속으로 내시경을 집어 넣어서 고통스러웠는데 온열시술은 한 시간이나 방광이 저리고 터질 것 같은 통증을 참아야 했으므로 영후는 거의 까물어칠 지경이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시술후 이틀동안 소변을 볼 때마다 요도와 방광의 통증때문에 헉하는 비명까지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통증없이 고통스럽지 않은 상태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아파봐야 아는 이 어리석음.
    건강하면 더 바랄 게 없다! 건강을 잃으면서까지 집착하던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한순간 부질없이 느껴졌다.
    아내와 나는 건강하지 못한 환자인 것이다. 영후는 가슴이 메어졌다.

    며칠 후 명동성당의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기도중에 영후는 30년 전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아내의 등을 바라보는 순간 하늘 한쪽에서 천둥치듯 들려왔던 "나의 반"이라는 소리에 대해, 나의 반이 나의 반이 아닌, 그 소리의, 주체의 반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동안 나의 반쪽으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이 나의 반이 아니라는게 이상한 노릇이었지만, 틀림없이 "너의 반"이 아닌 "나의 반"이라는 우뢰같은 소리를 들은 영후로서는 명백한 진실앞에 다른 의문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저사람이 쓰러진 것은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 30년이나 내곁에 있게 하시다가 이제 당신의 반을 데려 가신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겁니까?
    당신께선 내게 주신 은혜를 이렇게 거둬가시겠다는 거라면 나를 버리시겠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영후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안됩니다 지금 이렇게 저를 버리지 말아주십시요. 제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요. 하느님! 제발 당신의 반을 살려주십시요"하며 애걸복걸 매달렸다.
    이제 아내의 투병이 바로 영후자신의 문제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내는 하느님의 반이므로 살고 죽는 것은 하느님께 달린 문제가 아닌가? 그렇다면 아내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 것이다.'
    아내를 데려가시는 것은 나를 버리시는 것이므로 나는 하느님께 살려달라고 매달리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방탕한 삶을 회개하지 않고 살았지 않은가?
    나같이 방탕하고 음란하고 욕심많고 회개하지 않는 자를 30년이나 살려 놓으신 일은, 내가 하느님이라해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악인을 멸하시지 않고 지옥에 빠지지 않도록 온갖 기회를 다 주시는 사랑의 하느님'께서 이제 드디어 나를 포기하려 하시는가? 순간 영후에게 어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난 십여년을 피땀 흘려 일궈놓은 사업기반을 어느 안면도 없는 의사의 단 한번의 왜곡된 방송으로 초토화 돼버린 일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로인한 공장 폐쇄와 생각지도 못했던 중국으로의 진출.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그 악몽같던 불청객으로서의 중국생활. 그리고 아내의 쓰러짐... 몇몇에게 가지고 있는 살의... 사업에 대한 미련... 이런 잡동사니들이 쓰레기더미처럼 꽉 차 있는 머리 속...
    30여년전에도 하느님은 탕자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몇번의 계시를 보내주셨지 않은가?

    이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에 영후는 앞이 캄캄해졌다. 아내의 그칠 줄 모르는 기침소리도 영후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거의 피폐해진 몰골의 아내가 엎드린 채 가래를 뱉어내려고 콜록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고문과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이 나라는 인간에 대해 포기를 하신다면 전지전능하신 분께서 실수를 하시는 것이므로 절대로 그럴리가 없다.
    죄인인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나의 반" 이라고 천둥소리처럼 들려주시던 28년 전의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 이렇게 허망하게 포기하실리가 없는 것이다.
    아내가 쓰러진 것은 분명히 하느님의 깊은 뜻이 계시는 것이다.
    세상속에서 하느님을 쳐다보지 못하고 세상을 바라보며 발버둥치는 탕자를 위해 아내를 도구로 쓰시는 것이 분명하다.'
    하느님의 실존을 체험으로 알고 있으므로 영후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영후는 병실 한켠에서 얼마 전에 새로 바꾼 갤럭시S 스마트폰으로 몇날 몇일을 인터넷속을 헤메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미투데이니 하는 수많은 어플리케이션들을 실행할 수 있었지만 영후는 그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요즘의 대세인 쇼설네트워크가 허항한 짓거리에 불과하게 느껴졌다.
    사람들간의 교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을 들여다 보는 일이었으므로 예전처럼 카페나 블로그활동등 교류와 사회생활을 위한 일체의 행위들이 시들해 졌다.
    아웃라인에서나 온라인에서 언제 어느때나 사람들은 넘쳐흘렀고 모두들 살아서 소리들을 내며 출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바다와 같았고 영후는 망망대해에 둥둥 떠서 방향을 잃어버린 조각배와 같았다.
    어디에도 영후가 속할 곳은 없어 보였다. 모두들 잘 살고 있고 잘 굴러가고 있었다.
    영후는 비로소 이 거대한 구조속에서 제외된 아웃사이더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외된 자리에서 아이러니하게 영후는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뛰어들어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라도하지 않으면 잠시라도 살지 못할 것 같은 막막함.
    사실 정말 두려운 것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무력감과 끝없는 권태였다.

    아내를 살리는 일은 의사가 맡은 일이었으므로 영후는 그 일에서조차도 할 일이 없는 아웃사이더인게 분명했다.
    영후가 감당해야하는 몫은 그저 바라보며 괴로워하는 일 뿐이었다.
    "차라리 죄인인 저를 대신 죽게 해주십시요. 그것이 순리에 맞지 않습니까?"

    착한 아내가 저토록 힘든 고통속에 생사의 기로를 헤메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피를 말리는 것과 같았으므로 영후는 하느님에게 대신 죄값을 치르게 해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하루하루가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하는 요즘 하느님이 죄로 인해 시련과 고통을 주시는 것이라고 믿는 것은 잘못이 틀림없었다. 사랑자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을 행하시지 복수나 징벌같은 것으로 인간을 벌하시는 분은 아니라는 것을 영후는 믿는 쪽이었다.
    이러한 시련과 고통은 오로지 자신의 잘못된 삶에서 비롯된 것일 터였다.
    자신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생활이 가져온 결과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개선하는 것이 옳은 방법일 터였다.
    그렇다. 지금 이 상황은 아내를 돌보고 지키지 못한 잘못임이 분명하다.
    건강의 소중함을 모르고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지 못한 잘못이 뼈속 깊이 사무쳐왔다.
    푹 꺼져들어간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어 영후는 병원을 빠져나와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아내와 같이 가던 성당을 혼자가는 길이 서럽다.
    눈을 들어 파란 가을 하늘을 바라다 보니 언젠가 명동성당 마리아상 앞에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싱그럽게 미소짓던 아내의 얼굴이 겹쳐진다.
    줄무늬 연한 황토색마직 투피스가 참 잘 어울렸던게 바로 어제 일 같다.

    "내 아빠 최고야, 사랑해 사랑해" 하며 중환자실 병상에서 산소마스크를 쓴채 노트에 싸인펜으로 적어보이면서 두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려보이던 아내. 그 조그만 가슴속이 그렇게 썩어가고 있었다니...... 왜 몰랐을까? 영후는 아내를 지키지 못한 후회로 가슴이 미어졌다.

    " 형제님!" 명동성당 입구에서 누군가가 영후를 불러세웠다.
    혼자생각에 몰두해 있다가 뜻밖의 부르는 소리에 부르는 사람을 바라보니 백병원원목실 수녀님이 반가운 얼굴로 손을 들어보인다.
    " 아, 수녀님, 안녕하셨어요?"
    "형제님, 미사드리러 오셨나보네요, 자매님은 어떠신가요?" 수녀님의 안부에 "부원장께서 어렵다고 그러네요" 영후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마리아수녀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 힘내세요. 하느님께 열심히 간구하다 보면 기적도 일어난답니다. 그리고 살고 죽는 건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맡기시고 너무 근심하지 마세요" 마리아 수녀가 나를 위로했다.
    "네, 고맙습니다 수녀님, 매달릴데가 하느님밖에 없네요, 지금 구일기도를 하는 중입니다. 제 아내는 반드시 구해 주실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내도 살려는 의지가 강해서 반드시 나을겁니다"
    "형제님과 자매님의 믿음이 강하시니 꼭 치유되실 겁니다. 용기 잃지 마시고 힘내세요" 마리아 수녀가 미소띤 얼굴로 영후의 손을 꼭 잡고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성직자의 한마디가 지금의 영후에게 큰위안이 되었다.

    6시 저녁미사를 마치고 명동성당을 나서는데 핸드폰벨이 울렸다.
    " 나야, 리노"
    반가운 목소리에 "형? 왠일이야?" 영후는 반가워서 되물었다.
    "야, 너는 마누라가 입원했으면 연락을 해야지, 뭐하고 있냐? 아네스자매님에게 들었다. 여기 명동백병원 안이야"
    "엉? 병원에 오셨다구? 여기 명동성당인데 10분이면 금방 가니 잠시만 로비에 계시우"
    잠시후 도착한 병원에서 멀리 홍천에서 문안온 리노형이 반가운 표정으로 영후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아니 홍천서 여기까지 힘들게 뭐하러 오셨수?" 전화로 하지"
    영후가 미안해하자 리노형이 어깨를 툭치며 "아까 병실에 올라가서 니 와이프 보고 내려왔어"하며 "요앞에 가서 저녁먹자 아직 안먹었지"하며 앞장섰다. 병원앞 감자탕집에서 리노형은 몇년 전 먼저 보낸 마누라 얘길해주며 " 살고 죽는건 사람이 맘대로 못하는거야, 너까지 쓰러지면 큰일이야, 힘내! " 하며 영후를 위로했다.
    그리곤 봉투하나를 극구 사양하는 영후에게 "얼마 안돼" 하며 주머니에 찔러주곤 어두운 도시속으로 사라져갔다.

    어려운 형편인 줄 뻔히 아는데 멀리 홍천서 일부러 찾아와 위로해 주고 가는 리노형이 고마워서 영후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리노형이 더이상 안보일 때까지 영후는 그자리에 서서 형이 사라져간 명동의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명동의 밤하늘에는 별이 보이지 않았다.

    서울의 밤하늘에서 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영후는 고개를 잔뜩 젖히고 반짝이는 빛하나를 찾으려고 밤하늘을 뚫어지게 올려다 보았다.
    별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하늘과 네온불빛이 휘황하게 번쩍이는 명동의 밤풍경이 영후를 외롭게 했다
    명동의 밤은 스테인레스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지상에서 명멸하는 네온의 불빛이 갑자기 소외감을 증폭시켰다.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벼랑 끝에 선다.

    길 보이지 않는 곳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 끝난 곳
    삶과 죽음이 눈앞에 있는 길의 끝
    벼랑 끝에 서 본 사람은 안다.

    벼랑 끝에 서서
    잃었던 날개를 찾아
    혼자의 힘으로
    벼랑 끝에서 날아 오를 때
    바로 그때,
    깜깜한 어둠속에서 새길이 열리는 걸
    한걸음도 더 나갈 수 없는
    벼랑끝에 서 본 사람은 안다.


    벼랑끝에서3/영후



    그렇다. 길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벼랑끝에서도 솟아날 길은 있는 것이다.
    다시 날 수 있는 것이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나는 두려움을 버리고 새희망으로 다시 날아오를 것이다.

    영후는 두주먹을 꽉 쥐며 가슴을 폈다.
    폐속으로 찬공기가 잔뜩 들어왔다.

    아내의 폐속에도 신선한 공기가 가득찰 날이 곧 올 것이다.
    아내를 "당신의 반"이라고 하신 하느님께서 주관하시고 계신 뜻에 순명하기로 하자.
    어둠속에서 갑자기 새 빛이 보이는 느낌에 영후는 두주먹을 더욱 꽉 쥐었다.
    그리고 아내가 누워있는 백병원으로 씩씩하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주여! 모든 것을 주께 맡기나이다. 오직 주만을 바라보며 의지하나이다'

    언제나 기도의 말은 쉬웠고 실천은 어려웠지, 그러나 이제 나는 진정한 기도를 할 것이다.
    내 정신속의 깊고 어두운 곳을 깨끗이 비우고 경건함으로 채우리라.
    오직 하느님으로 채우는 삶을 살리라.
    영후는 하느님께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작정했다.

    아내의 가슴옆에 튜브를 뽑고 항암치료를 시작한지 일주일 쯤 지난 어느날 목포에서 비보가 날아왔다.
    막내오빠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이었다.

    아직 칠십도 안된 막내오빠가 돌아가셨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전번에 병원에 면회까지 오신 멀쩡하신 분이 졸지에 세상을 떠나셨다니...... 아내의 슬픔이 컸다.
    충격적인 소식이 해로울 것이 뻔해서 영후는 쩔쩔매며 아내를 위로하기에 급급했다.

    막내오빠는 동생을 면회오신 몇일 후 목포의 어느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폐에 아주 조그만 종양이 발견되어 간단한 제거수술을 받은 다음 날 호흡 곤란으로 갑자기 사망하셨다고 하였다.
    누가 봐도 명백한 의료사고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막내오빠의 부인이 그냥 시신을 화장하고 수습해버린 통에 형제가 나서서 이의를 제기할 아무런 근거가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어서 모두들 꿀먹은 벙어리꼴로 장례를 치뤘다고 했다.
    "오빠가 우리 막내 대신 가셨나 보다"
    막내언니가 막내를 위로하는 말을 했다.
    언니의 위로말에 아내의 눈에 눈물이 글썽해졌다.

    멀쩡하던 막내오빠와 사경을 헤메다 목숨을 부지하기 시작한 아내.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오묘하신 뜻은 정말 헤아리기 어려웠다.
    기도를 시작한 지 100일이 지났다.
    그동안 몇번이나 중단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명일동근처 어느 고시원에 잠시 숙박을 하는 중에 고시원원장이 근처 교회 권사라 새벽기도에 일주일간이나 같이 참석했다. 영후보다 더 아내의 이름을 성경위애 올려놓고 기도를 해주는 권사님이 고마워서 게으름을 부릴 수도 없었기에 새벽같이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새벽4시가 되기도 전에 교회 대성전과 2층 3층의 좌석들이 교인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이 꼭두새벽에! 영후는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30여 년을 새벽기도로 유명하다는 명성이 자자한 명성교회.
    이 많은 사람들이 새벽같이 이렇게 가득모여서 무엇을 하는건가?
    무슨 절절한 염원이 있기에 단잠을 마다하고 이런 신새벽에 저리도 열심인가?
    갑자기 영후는 자신의 신앙심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영후에게는 저런 열정이 어디에도 없었으므로 신새벽에 온 교회가 가득차서 앉을 자리마저 없는 이런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끄럽구나. 하느님에 대한 내 믿음이란게 저들에 비하면 미미하기 짝이 없구나' 영후는 백일이 넘게 골방에서 혼자하던 기도가 갑자기 보잘 것없이 느껴졌다.
    심신이 지쳐 있는 지금 영후는 저들의 열정이 부럽기만 했다.
    목숨을 걸고 오직 하느님만 의지하며 매달리지 못하는 나는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영후의 가슴 깊히 회의가 밀려왔다.

    아직 영후는 몇몇에 대한 살의와 증오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중이므로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영후가 목숨을 버리는 날 그들과 함께 갈 것이라는 강한 살의는 하느님과 상반되는 악마적인 집념이었으므로 영후는 거짓 신앙인이 분명한 것이다.
    악마적인 본성이 지배하는 영후.
    '나를 해친 모든이들에게 복수할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가르침은 너무 어렵고 실천불가능한 가르침이므로 나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차라리 원한이나 풀고 죽으리라.
    나를 해친 이들에게 피눈물나는 고통을 안겨 주리라.
    죽기 전까지도 악마적인 이 복수의 집념을 나는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다.
    때가 되면 나는 내 복수를 실천할 것이다.
    나는 영리하므로 치밀하게 준비한 후 실행할 것이다.
    피를 볼 것이다.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해치우리라.
    내속의 악마가 나를 파멸로 이끌고 하느님은 결코 나를 구하지 못하실 것이다.
    무능한 하느님. 그러나 약속한 기도는 끝까지 할 것이다.
    168일간의 작정기도가 끝나면 다시는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그후부터 아마도 나는 악마로 변해 갈 것이다.'
    아내가 쓰러진 후 정신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음을 영후는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내는 영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할 즈음에 조금씩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열이 37.2도로 내리고 항암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항암주사가 효과가 있어 쬐금 좋아졌어요." 부원장이 밝은 얼굴로 아내를 쳐다보며 웃었다.
    "내가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치료하는 환잡니다. 치료잘하고 관리 잘하면 5년이상 살 수 있고 완치도 가능합니다. 열심히 해봅시다" 부원장이 영후를 보며 격려했다.
    어느덧 사개월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6월하순에 서울로 올라온지 어느덧 넉달이 훌쩍 가고 만추의 계절이었다. 거리에는 가로수잎들이 뒹굴고 있었다. 꿈같이 지나간 사개월이었다.

    그동안 4번의 항암을 잘 견뎌준 아내가 눈물나도록 고마웠다.
    이제부터는 퇴원을해서 3주에 한번씩 항암주사를 맞으러 올라오는 것이 치료 일정이었다.
    "아주버님, 이거 얼마안되지만 형님치료비에 보태쓰세요" 퇴원하는 날 제수가 흰봉투하나를 영후에게 건네주며 퇴원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게 기적이라며 활짝 웃었다.
    형제가 있다는게 얼마나 고마운가! 봉투속에는 500만원짜리 수표한장이, 적지 않은 금액이 들어있었다.
    "집사람 반드시 회복될겁니다. 하느님이 살려주실 겁니다, 고마워요 제수씨" 영후는 제수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워서 제수 손을 꼭쥐었다.

    간이산소통을 싣고 목포로 내려온날 다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던 그때의 심정이 다시 기억나서 영후는 감개무량해졌다.
    "목포 들어섰습니다" 서둘러 처형들에게 전화하고 영후는 집으로 차를 몰았다.
    "여서방이 우리 막내 살렸네. 그동안 고생했소" 큰처형이 집으로 들어서며 반가운 인사치레를 했다.
    "목포 한국병원에 그냥 둬뒀으면 우리 막내 이렇게 못살았을텐데 여서방 덕분에 살았어"
    처형들이 돌아가며 인사치레를 했다.
    처형들이 집에서 장만해온 음식들로 저녁을 먹고 피곤할테니 일찍 쉬라며 처형들이 돌아간 후 장거리 이동에 파김치가 된 아내와 영후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일단 집으로 돌아왔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아내가 건강할 때와 가사일은 커녕 자기 몸하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지금 영후가 감당해야할 일들이 큰일이었다.
    잠시도 한눈 팔수 없는 환자곁에서 영후는 바깥 일에는 손이 묶여 버린 것이다.
    도우미를 쓴다해도 낮에 잠깐이지 밤에 환자곁에서 간병까지 해줄 수는 없었다.
    처형들이 잠깐씩 찾아와서 도운다고 해도 그것은 일과성일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순 없었으므로 영후는 묘안을 짜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사람이 죽느냐 사는냐 하는 상황이지만 산 사람도 살아야 한다.
    더군다나 아내의 병원비며 약값이 장난이 아니었으므로 영후가 벌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입원치료비와 간병인비 약값등이 4천만원을 훌쩍 넘었다.
    돈없는 사람은 말그대로 살리려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다.
    이제 은행잔고도 거의 바닥상태였으므로 고민이 깊어졌다.
    최악의 상황까지 가기 전에 벌어야 한다.
    재작년에 금호생명주식을 1만주 산게 거의 휴지조각이 되다시피한게 타격이 컸다.
    4억정도 나갈무렵 팔아치우지 않았던게 가슴이 쓰렸다.
    상장하면 더 오를 것이란 기대와 욕심때문에 쥐고 있었던 것이 결과는 깡통이 되다시피했다.
    10년을 내다 보고 장기투자하라는 워렌버핏의 주식투자철학이 한국땅에서는 멕혀들지 않는다.

    한국의 주식시장에서는 단기수익을 따 먹는게 장땡이다.
    더 투자할 여력도 없을 뿐아니라 주식이라면 쳐다보기도 싫어서 이제는 매일 주가도 체크하지 않은지 오래다.
    "될대로 되라지..."
    '내가 할 일은 그동안 해오던 청국장사업에 전력을 다하는 게 순리가 아닌가?'
    강경화라는 교만하고 질나쁜 여자를 만나 일년을 허송하고 천만원이 넘는 경비와 억대의 시설투자가 녹슨 고철이 되어버렸지만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

    벼랑끝에서 다시한번 날아보자.
    어차피 죽기아니면 살기 아니겠는가?
    더이상 솟아날 희망이 없을 때는 몇몇과 같이 벼랑끝으로 뛰어내리면 그만이다.
    가슴깊은 곳에서의 증오와 복수심이 사그라 들지 않는 한 이제부터 나는 하느님에게 기도할 수 없다.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실천불가하므로 나는 함무라비 법전에 따라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복수할 것이다.
    반드시 나를 배신한 자들을 무릎꿇리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목숨을 구걸하게 만들고 말 것이다.
    이미 꺼지지 않는 용광로 같은 복수심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어서 자칫하면 이 불길에 영후자신이 타버리고 말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영후는 절박한 상태에 몰려 있었다.
    한치도 더 나갈수 없는 벼랑끝.

    '띵똥땡' 새로 바꾼 갤럭시S 스마트폰에 메세지가 들어왔다.

    "나 하나가 예수되면 많은 사람 행복하고 나 하나가 마귀되면 많은 사람 불행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하시고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이바울 목사.
    초등학교 동창이자 외삼촌인 이바울 목사는 영후의 절박한 상황과 가슴속의 원한을 풀어주려고 수시로 가슴에 와 닿을 성경속의 복음을 메세지로 보내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증오의 불길이 가슴속에 타고 있는 이상 나는 복수를 결행할 것이다.
    나는 영리하므로 결코 내손에 피를 묻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구도 모르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복수하고 말 것이다.

    이제 더 잃을 것도 없지 않은가?
    반드시 피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상대를 멀리서 지켜보며 원한을 풀고 말 것이다.
    영후는 복수심을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상대가 방심하고 있을 때 단숨에 상대의 허를 찔러 쓰러뜨릴 것이다.
    영후는 스스로 깊히 다짐하며 이바울 목사의 메세지를 삭제해 버렸다.

    하당의 바닷가에 나간 어느날 오후 햇빛이 눈부셨다.
    잔잔한 바다위에 갈매기가 날고 사람들은 더없이 평화스러워 보였다.

    "목포는 항구다" 유행가가사를 흥얼거리며 영후는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막내형님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난 목포는 이제 영후에게 정붙힐 사람 없는 타향이었다.
    북항뒤께에서 소형낚시배를 두척이나 운행하던 막내형님이 안계신 목포의 바다는 이제 영후에게 낯선 바다로 바뀌었다.

    먼 수평선을 바라보던 영후의 마음이 쓸쓸해졌다.
    소형선박면허를 내서 서해바다의 섬들을 헤집고 다니려던 영후의 꿈이 산산조각나 바다 저멀리 떠내려가고 없었다.
    겨울로 가는 길목인 11월 중순오후의 햇볕은 따사롭고 평화스러웠지만 영후의 가슴속에는 찬바람이 불었다.

    나마스떼- 박범신선생장편소설

    며칠동안 영후를 현실에서 잠시나마 다른세상에서 살게 해준 소설이다.
    네팔이나 태국, 말레이시아등 가난한 나라의 근로자들이 한국 땅에서 열악한 환경과 조건속에서 살기위해 악전고투하는 내용이다.

    나마스떼,

    가장 가난한 네팔사람들이 일상에서 하는 인사말.
    '내 속의 신이 당신 속의 신에게 인사드립니다.'
    두손을 합장하며 몸을 낮추며 가장 공손한 자세로 하는 인사말.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네팔사람들이
    얼마나 신성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지 감탄하게 된다.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는 성경을 줄줄 꿰지 않아도
    당신 마음속에 계신 신에게 내 마음속에 계신 신이 인사를 드립니다는
    신에 대한 믿음과 신성한 교류에 깊은 감동을 갖게 된다.
    서로를 신성시 여기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몸에 배어있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가장 부유한 인사.
    (오늘 하루 나를 스쳐간 모든 이들에게 늦었지만 다시 한번
    나마스떼!)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과 불합리한 법을 교묘히 이용해서 그들을 벼랑끝으로 내모는 악덕업주들.
    그들의 처절한 삶의 한 단면을 보면서 영후는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 존재들인가 몸서리를 쳤다
    사람들은 여전히 악하고 끝없이 죄를 범하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실패한 것이며 대속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인간은 창조주의 실패작임이 틀림없다.

    영후의 가슴속에 인간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고 회의가 밀려왔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백년도 못 살 세상에서 천년을 살 것처럼 온갖 욕심과 죄악으로 가득차 뒤죽박죽이 되어있는 이 지구를 창조하신 창조주는 이런 결과를 정말 예상하지 못한 걸까?
    인간이 저지를 죄에 대해 왜 완벽한 대비를 해놓지 않은건가?
    영후는 창조주의 실수가 원망스러웠다.
    설령 인간을 시험하기 위해 죄를 범하게 해 놓으셨다해도 이 결과는 너무 끔직하여 용납하기 어려웠다.
    죄를 사함받아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서 영생을 얻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종교적 논리는 어쩌면 인간의 약점을 간파한 얄팍한 교리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왜 인간들은 이 무한한 우주의 한 점과 같은 지구 속에서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어 살아야 하나?
    하늘에서 이글이글 타고 있는 태양을 보면 너무나 신비스럽지 않은가?
    하느님의 목소리를 실제로 듣고, 두번째로는 눈앞에 나타나 메세지를 남기고 허공으로 사라진 예수를 직접 목격한 영후는 혼란스러웠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다맡기고 사는 성직자가 아닌 이상 일상의 잡다한 일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 않은가?
    아내마저 쓰러져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게 지금 영후의 처지였다.
    '아내의 일은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내 앞의 일은 내 스스로 처리한다'
    그것이 순리인 것이다. 무슨 큰 영화를 보겠다고 내 스스로의 인생길마저 자신의 의지대로 헤쳐나가지 못하고 의지박약하게 의탁한단 말인가?
    영후는 자신의 의지대로 처리하기로 내심 작심했다.
    몇몇에게 대한 강한 복수심을 버리지 않는 이상 하느님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반드시 ... 해치우리라... ' 臥 薪 嘗 膽 臥 薪 嘗 膽 臥 薪 嘗 膽
    영후는 죽더라도 반드시 복수를 하리라 다짐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뜻과 상반되는 악마적인 집념. 영후의 가슴속에 악마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내 탓이 아니다. 나를 이렇게 복수심에 불타게 만든 그들의 잘못이다.' 영후는 그렇게 자신을 변호했다.

    그렇게 아내의 병간호와 백일이 넘게 하는 구일 기도와 복수심에 사로잡혀 지내던 어느 날 메세지하나가 영후에게 날아왔다.
    오래 전에 연락이 끊어졌던 김희열에게서 만나자는 소식이 온 것이다.
    '김희열입니다. 오래동안 소식 못 전해 미안합니다. 항상 여사장님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마침 좋은 스폰서를 만나 여사장님과 사업을 하고 싶으니 한번 만나 얘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날아온 한통의 문자메세지.
    이틀후 서울행 KTX를 타고 용산역에 도착한 영후에게 김희열이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오랫만입니다. 여사장님"
    "허! 사람 참, 그렇게 소식을 뚝 끊고 사라지는 사람이 어디 있소?"
    영후도 반갑게 손을 마주 잡으며 그동안의 근황을 물었다.
    "이 것 저 것, 손대는 것 마다 일이 꼬여서 한동안 연변에서 숨죽이고 있었지요 하하"
    김희열이 예의 호탕한 성격을 드러내며 웃었다.
    근처 조용한 찻집을 찾아 자리한 후 김희열이 꺼낸 얘기가 흥미로왔다.

    "여사장님, 근황은 노용천 식품기술사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제가 중국에 꽌시인 한족 친구가 있어요. 산동 모씨인데 중국에서도 명문 10대가에 꼽히는 가문입니다. 이 친구가 청화대학교 출신인데 지금 부주석 왼팔 노릇하는 삼성 장군과 아주 절친인데 제가 직접 만나 여사장님 낫도얘기를 했지요. 이 양반이 대번에 그거 한번 해보자 하더군요."

    김희열이 영후를 쳐다보며 상기된 억양으로 다음 말을 꺼냈다.
    " 산동성에 계란대추를 쥬스로 가공하는 공장이 있는데 100평정도를 쓸 수 가 있습니다.
    제가 설비를 해드릴테니 거기서 대량생산해서 군 장성을 통해 중국군 비상전투식량으로 납품사업을 해 봅시다.
    원래 병자호란때도 콩삶아서 말안장밑에 가지고 다니면서 전쟁식량으로 쓰던 나라 아닙니까?""
    영후는 내심 긍정적이 되어서 김희열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영후에게 중요한 건 일이었다.
    일의 주관자는 하느님이란 것을 영후는 알고 있지만 그러나
    가슴속에 뿌리칠 수 없는 복수심이 가득 차있는 마당에 하느님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랑자체이신 하느님께 복수를 부탁할 수는 없었다.

    영후가 복수심을 버리지 않는 한 하느님과의 원만한 관계는 유지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일이던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시는 것이다. 순명하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리는 것 만이 할 일이다'

    28년 전 중동의 사막에서 쓰러진 영후를 구해 주신 하느님을 배신할 수는 없다.
    아내를 만나게 해주신 아니 아내라는 귀한 선물을 주신 그리고 온 천지가 번쩍 빛나는 빛과 "나의 반" 이라는 우뢰와 같은 소리로 알려 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배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영후는 세상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느라 영후와 함께 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죽든지 살든지 모두 다 주관자이신 하느님께 맡기는 것이 은혜를 갚는 길이다. 모두 다 버리자. ' 깨달음이 영후의 가슴속에서 크게 울려왔다.

    전쟁에서 패해 크게 낙담하고 있던 다윗을 사흘만에 다시 대승케 하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하느님의 깊은 뜻을 다윗이 미리 알았겠는가?
    영후는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알 수 는 없었지만 하느님이 자신과 함께하고 계심을 깨닫기 시작했다.

    168일의 기도가 이제 열흘 후면 끝이 난다.
    하루도 빼지 않고 하느님께 매달렸던 168일을 하느님께서 듣고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그리스도의 첫기적을 영후는 믿는 사람이었다.
    물을 포도주로 단숨에 변화시키신 기적을 영후는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믿고 있었다.
    포도주가 숙성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정을 한순간에 그것도 물로서 포도주로 만들어버리신 예수의 능력을 그 기적을 영후는 믿고 있는 것이다.

    지금 벼랑 끝에 내몰린 영후에게 잃어버린 지난 30년의 시간을 단시간에 보상해주고자 하시는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영후는 감지할 수 있었다.
    아내가 쓰러진 후 "늦었네, 얼마 못가겠어"라고 단언하던 주지스님의 신력이 틀렸음을 하느님께서 증거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영후가 부정을 타서 아내가 쓰러진게 아니란 것도 증명해 주실 것이다.
    이제부터 모든 문제를 하느님께 맡기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다.
    영후의 마음속에 하느님에 대한 강한 확신이 차올랐다.

    '그동안의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주관자이신 하느님께 순명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태도가 아닌가?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떤 삶이 주어지던 주관자의 뜻대로 순명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바로 참신앙이 아니겠는가?' 영후는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그동안의 죄와 어리석음을 회개했다.
    사탄은 욕심을 틈타 영후에게로 왔었고 사탄의 유혹에 휘둘려 산 그동안의 삶은 보기에도 끔찍한 지경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사탄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느님께 의지하는 방법밖에 없음을 영후는 깨달았다.
    새로 개정되어서 6일이 추가된 168일의 구일기도가 끝난 날.
    영후는 있는 그대로 그자리에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려 놓았다.
    삶과 죽음마저도.

    영후는 모든 것을 다 하느님께 맡기기로 작정했다.
    살면서 기대를 갖게하는 일이나 절망스러운 상황이나 어떤 것이든 영후의 주관대로 되어지는 것은 없었으므로 모두 다 하느님께 내려 놓기로 했다.

    '인간사이의 약속을 믿고 지나온 날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인간을 믿고 신뢰하며 살아온 날들의 어리석음을 다시 되풀이 하지 않으리라, 다시는 순리를 벗어나 무리한 욕심으로 자신을 상처받게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애쓰며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자존심을 다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던 지난 날들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주관자이신 하느님께 인정받는 것이 우선인 것이다.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면 이자리에서 그대로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은 것이다.
    하느님이 반드시 함께 해 주실 것이다.' 영후는 마음을 비웠다.

    얼마 후 거짓말처럼 말씀이 내려왔다.
    "원수를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처럼 서로 사랑하여라.
    나를 위해 어떤 것을 포기한다면 나는 현세에서 세 배를 주어 복이 넘치게 하겠고
    내세에서는 영생을 살게 할 것이다."

    마음을 비우자 거짓말처럼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새해 1월 1일 새해인사와 함께 작년에 만났던 미국 챔프그룹 회장의 전량 오퍼약속이 메일로 날아왔다.
    미국내 36개주의 대형마트와 20여년을 거래하고 있는 회장의 오더와 중국고위장성과의 협조라면 한번 해 볼 만한 사업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전시회때 만난 중국내 식품회사의 대표와 말레이시아, 싱가폴등 동남아시아의 200여개 브렌치에 삼십년간 식품을 수출하는 업체의 대표도 제품생산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영후는 새 의욕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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