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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出征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1-08-23 12:57 조회4,680회 댓글5건

    본문

    *出師表*

    가자! 崇山 少林으로!
    길없는 홍해를 향해 모세가 믿음으로 나아 갔듯이!

    태산을 오른다. 산을 오르는데 산이 없어지기야 하겠는가?
    너무 높이 날아 오른 龍이
    날 하늘을 잃었다는 시황제의 아버지
    2,000년전의 할부지 國商 呂不爲처럼
    거대한 중국 대륙을 한번 날아보자.
    가장 높게 나는 도요새처럼
    더 이상 날 하늘이 없어질 때 까지.

    12,9,14


    <序盤>

    2011,8,11 Pm 8시.
    상해 홍차오공항에 도착하다.
    대련의 삼보그룹 왕청주회장의 호의를 보류해 두고 후조오로 왔다.
    중국진출은 아무래도 혼자 시작하는 것보다는 현지회사와 합작하는 것이 힘이 덜 든다는 판단에서다. 상해서 140km, 1시간 30분 거리. 浙江省 후조우.
    바다만큼 큰 호수 太湖가 있는 곳.

    '湖州珍露生物制品有限公社'

    나는 이제 호랑이굴로 찾아온 것이다.
    이제 호랑이굴 앞에서 호랑이를 불러내야 한다.
    하루 전에 와있던 박박사와 부총경리가 마중나와서 후조우시내의 즈베이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주진로생물제품유한공사'에 도착한 것은 4박 5일간 즈베이호텔에서 머물다가 공장내 숙식할 방과 사무실준비를 마친 8월 16일 오전 11시경.

    중국 남방 湖州의 무더위는 또 다른 시련이다.
    큰 湖水 太湖가 있는 이 곳 湖州의 기후는 습도가 높아
    하루종일 사무실과 숙소의 에어컨을 켜두지 않으면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그야말로 푹푹찌는 찜통속 같다. 따로 한증막에 갈 필요가 없다.
    언젠가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있을 때의 습기 하나없이 온몸이 따갑게 느껴지던 더위와는 정반대의 기후다.
    이제 한국에서의 나는 없는 것이다.
    중국에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중국인들의 만만디에 질리지 말고 천천히 한걸음씩 태산을 오르는 것이다.

    8월 22일.
    동사장들과 합작회사의 계약서에 서명후 호랑이굴에 온 각오를 새로 다졌다.
    마침 미국의 피회장이 내몽골쪽 일을 보러 중국에 와 있다고 반가운 연락이 왔다.
    상해 방문일정을 잡아달라는 요청에 내몽골쪽일을 마무리하고 상해 방문일정을 알려주기로 답신이 왔다. 타이밍이 절묘하다.
    북경의 곽소일사장과도 통화했다. 동남아시아쪽 200여개 브렌치를 핸드링하는 큰 바이어다. 북경에서 만난 지 3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연락이 닿으니 좋은 느낌이다.

    급할 것 없는 남방사람들.
    처음 시작이 어렵지 한번 물꼬를 터 놓으면 그때부터는 순리대로 일사천리다.
    합작회사 '진로식품유한공사'설립계약후 열흘만에 회사 동사장과 총경리, 부총경리,
    깐깐한 생산품질관리부장과 도면을 놓고 공장내부설계와 설비에 대해 합의하다.
    재키첸과의 지분관계도 재키의 지분양보로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하게 해결되었다. 부담이 컷었는데 생산쪽 지분보다는 대만의 친구 홈쇼핑 주회장과 판매쪽에 주력하겠다고 하니 나로서는 부담이 없어졌다.
    '대인은 신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공자曰.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8,24.
    대련의 이여사는 거의 매일 전화오지만 받을 수가 없다.
    이쪽에 와있다고 할 수도 없고...
    6개월치 임대료를 선납해 놓고도 연락을 안하니 답답할테지.
    임대료가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삼보 왕회장이 이여사를 채근할테지만 할 수 없다. 지금은 대련쪽보다 이쪽에 치중할 때. 박박사가 얘기를 잘 해두었다니 시간을 벌고 볼 일.
    일에 대한 비전이 열정을 불러 일으킨다.
    无盐豆豉不敗!!!
    스스로를 돕는 자 하늘이 도운다. Good Luck!

    2011,8,25일
    그저께 밤부터 연사흘 밤새 비가 쏟아진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비로 인해 한풀 꺽였다.
    에어컨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어 살만하다.
    기후가 인간에게 얼마나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지 절감한다.
    쏟아지는 비소리를 들으며 잠자는게 좋다.
    잠잘 곳 주고 밥주고 사무실도 주니 돈 들일이 하나도 없다.
    서울보다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하다.
    한국에서 보다 중국에서 일하는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내가 중국체질인지 아무튼 좋다.
    호랑이굴이 이렇게 아늑하게 느껴지다니......
    화이부동!!

    2011,8,27
    여기 남방사람들은 그저 내가 미국의 바이어에게 낫도를 생산해서
    팔겠다고 온 사람으로 알고 있다.
    미국 36개주의 대형마켓에 납품하고 있는 바이어에게서
    상당한 물량을 주문 받아있으니 내게 투자를 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호랑이를 잡으러 온 사람이다.
    일본의 낫도가 바로 2,000년 역사를 가진 자기들의 '豆豉'인데 다시 낫도를 먹는 아이러니.
    낫도의 원조가 진한시대의 '豆豉'란 것이 고문헌에 나와는 있지만 현대식 제조기술이 없으므로 유명무실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일단 낫도수출후에 전통발효식품인 '豆豉'로 공략할 것이다.
    '韬光养晦'


    -豆豉에 대한 자료

    [编辑本段]
    纳豆源于中国。纳豆类似中国的发酵豆、怪味豆。古书(和汉三才图会)记载有:
    “纳豆自中国秦汉以来开始制作。
    "纳豆初始于中国的豆豉"。据《食品文化·新鲜市场》(石毛直道著,第101页)一书介绍,
    纳豆起源
    纳豆源于中国秦汉时期,唐代高僧鉴真和尚抵日弘法传至日本,起初为僧人素食,后兴盛与民间。纳豆初始于中国的豆豉,是由煮熟的黄豆经纳豆菌发酵而成的一种表面布满粘液的风味食品,类似发酵豆、怪味豆。古书《和汗三才图会》记载有:“纳豆自中国秦汉以来开始制作”唐代高僧鉴真和尚在公元754年到达日本时,也曾在他的《东征传》里有带了30石甜豉到日本的文字记载,也就是说他带了一种干燥制法的纳豆到日本,这种叫豆豉的食物就是现在仍然是很多中国人喜爱吃的东西。在日本有关纳豆最早的记载是在900多年前的1053年,一个叫藤原明衡的日本人写了一本《新猿乐记》的书,书中第一次出现了“纳豆”二字。从这本书里我们算是找到了为什么豆豉会被称做“纳豆”。因为按照这本书里的记述,纳豆就是纳所之豆。那什么叫“纳所”呢?纳所就是寺庙的厨房的意思。这也和大和尚鉴真带豆豉来的传说相一致。我们可以推想鉴真不仅带来了甜豉,也把甜豉的制法传到了日本的寺庙。蒸煮后的大豆接触酵母菌成为麴豆,再用盐水浸泡发酵后干燥保存就可以食用了。这种做法在古代日本的寺院被僧侣广为使用,所以纳豆也叫“寺纳豆”。近年来,纳豆的营养成分和医疗功能日益被重视,在日本掀起了“纳豆热潮”,甚至有“纳豆拯救地球”的口号,欧美国家把纳豆喻为“世纪超级营养食品”。

    9,3
    내 생애 가장 무더웠던 여름을 얘기하라면 2011년 8월의 浙江省 후조우의 폭염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이 공원 저 공원으로 헤메고 다녔던 한국에서의 8월도 만만치는 않지만 위도상으로 조금 더 남쪽인 이 곳 상해 후조우의 여름은 한국의 여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기가 막히는 건 이 곳 사람들은 이런 폭서를 그냥 담담하게 여기며 적응해서 살고 있다는 점이다.
    사방이 온통 물인 곳.
    논을 제외하면 온통 물웅덩이 천지다. 그 물웅덩이마다 양어를 한다.
    물줄기가 太湖까지 이어져있고 상해까지 운하로 연결되어 있다.
    물이 많고 습도가 높다보니 바깥 외벽에 타일을 붙힌 집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집들 외벽이나 내부에 곰팡이가 쓸어 시커멓게 변해있다.
    방수페인트로 깨끗하게 단장하면 좋을텐데 온동네가 다 퀴퀴하고 시커멓다.
    이 곳 후조오의 또 한가지 특징은 논과 물웅덩이를 제외한 다른 곳엔 뽕나무가 무성하다.
    예전 한국의 잠실처럼 뽕나무와 누에를 키워 실크를 생산하는 것이다.
    마을 곳곳엔 실짜는 구식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 곳에서 생산한 원단들은 이웃 항주에서 가공하여 내수용으로 공급되거나 수출되고 있다.
    브라질에서 견직으로 수 천억을 벌어 재벌이 된 외삼촌이 '국제섬유무역협회'회장이 되어 항주와 거래를 하고있다고 하더니 내가 바로 항주에 공급하는 원산지 후조오에 와 있는 것이다.
    아예 외삼촌과 거래를 터서 견직수출에 뛰어 들어볼까?
    낫도사업이 궤도에 오른 후 연구해 볼 작정이다.

    이 곳 주민들 다수가 내가 와있는 '호주진로생물유한공사'에 공인으로 복무하고 있다.
    동사장은 이 곳 촌장이다.
    한달 임금이 1,500원에서 2,000원인데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25만원에서 35만원 정도다.
    아침 7시 출근해서 오후 4시 30분에 퇴근이지만 퇴근후 또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말도 안되는 임금을 받으면서 힘든 노동일을 불평없이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퇴근하는 공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만감이 교차한다.
    이 곳에서 생산공장을 하는 사업가들은 낮은 임금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자들이다.
    중국의 조선동포들이 한달 150~ 200만원을 벌려고 기를 쓰고 한국으로 가려는게 이해가 간다.
    중국의 한족원주민들의 생활상은 그야말로 한국의 60년대 낙후되어 있는 후진국의 모형이다.
    중국이 세계최대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한족원주민들의 생활상이 나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자본주의의 도입과 발전과정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사회자본주의 경제대국 중국이 풀어야할 해법이 없는 숙제. 아마 100년, 200년이 지나도 변화가 없을 것이다.
    가난한 이웃을 위한 기부문화의 확산과 균등한 기회제공이 한국에서나마 확산되길 바라는 심정이다.

    9,4
    수 천만원이 넘는 명품 수제백을 구매하려고 수 천명이 대기중이라니 이게 정말 한국에서 일어난 일인지 어이가 없다.
    대학생이 등록금때문에 빚쟁이가 되는 세상에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않는 사실이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나라에서 누군가가
    희망이라는 배를 타고 가자고 이마에 띠를 두르고 목청을 높힌다.
    그러나 아는 이는 안다.
    희망이란 그저 가슴속에 남아있는 한가닥 미련이란 것을.
    희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가슴속에 시커먼 상처자국만이 남아있는 이들은 안다.
    다시는 노래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웃슴을 빼앗긴 세상이란 것을.

    그런데 당신!
    노래를 한다고?
    노래를 해야 한다고?
    그래도 웃어야 한다고?
    그렇게라도 살아야 한다고?
    나는 눈물이 난다.
    분해서 눈물이 난다.

    이런 이기적인 한국인들을 위해서 미국의 피회장은
    미국에 '코리안 커뮤니케이션센터'를 만들어 한국인들을 돕겠다고
    오늘도 세계를 맨발로 뛰어다닌다.

    젖은 꽃잎 비에 다시 젖으며 /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 우리는 이 학교에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 남아 있는 꽃잎들이 그렇게 말하며 울고 있었다. / 우리도 이 세상에서 행복하지 않다. / 카이트스 울타리 밖도 여전히 카이스트 / 징벌적 통보를 받고 차등대우를 받고 탈락하고 천천히 잊혀간 꽃잎들은 얼마나 많았는가 / 카이스트보다 더 어린 꽃들도 불행하고 / 카이스트보다 더 진도가 나간 인생들도 / 이 밤 혼자 쓴 잔을 마시며 / 빗발 몰아치는 숲의 나무 잎을 보고 있다. / 우리는 겨우 이런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 흔들리는 나무 위에서 하루하루 끔찍한.
    - 도종환 카이스트.



    11,9,14
    타국에서 맞이하는 명절은 쓸쓸하다.
    한국에서도 명절은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송편한쪼까리는
    먹을 수 있었는데 그 차이가 커다.

    그저께 후조오시에 허가신청이 들어갔다.
    어제는 시의 담당이 와서 공장을 둘러보고 체크를 하고 갔다.
    후조오시의 허가가 통과되면 절강성에 다시 최종허가를 받아야 한다.
    아마 한달에서 한달 반 정도 소요될 것 같다.
    보름이 넘도록 질질 끌다가 이제사 허가를 신청하다니......만만디...
    폐수배출시설이 되어 있는 곳까지 도깡을 묻어 하수도를 연결해야 하는 공사가 큰 공사다.
    시설이나 설비문제는 회사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제품개발에나 신경쓰면 될 터.
    잘 될 것이다.
    잘 되게 되어 있으므로.

    9,19
    아침 일찍부터 기관총소리가 요란하다.
    전쟁터였다면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수교한 중국은 적국이 아니다.
    기관총소리처럼 들리는 소리는 바이브레타로 콩크리트바닥을 뚫어 폐수처리시설과 연결하는 하수관공사를 하는 소리다.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르..."
    전체설비비가 약 2억정도 투자되는 사업이다.
    제일 문제가 되는 폐수처리시설만 하더라도 새로 설치하려면 적어도 1억은 별도로 들어간다.(추가비용들여 확충공사하는 중임)
    더군다나 시설제공에 허가사항 처리까지 모두 도맡아 해주니 보이지 않는 가치로 따지자면 그 이상이다.
    그냥 별 신경쓰지 않고 한 두달 정도 기다리면 공장가동이 가능하니 편하다.
    이제 중국도 3년 전 보다 낫도시장이 엄청나게 커져있다.
    낫도 생산회사와 판매회사수도 상당히 많아졌다.
    중국인들 뭘 한다고 하면 투자규모도 상당하다.
    중국에 일본의 낫도가 진출한 지 20년째.

    http://nadou.tv
    http://www.nadouduotai.com
    http://sfysp.taobao.com
    http://ebjsp.tmall.com
    http://www.hongchahu.com/nadou

    눈앞의 이익만 탐하는 고가판매 전략만으로는 진정한 대중화와 기업을 이뤄내기 어렵다.
    좋은제품을 대량생산하여 박리다매로 공급하는 것이 작고하신 '유한양행'의 창업주 유일한회장이 강조한 첫번째 기업덕목이다.
    특히 건강식품을 생산판매하는 사람들이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교훈이다.
    이제 중국에서 '또우처"를 대량으로 생산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놓고 박리다매로 시장에 진출할 것이다.

    10,24
    며칠 전 회사차로 상해에 다녀왔다.
    한국영사관에 들러 서류에 확인도장을 받고 3천불을 중국은행에 예치한 후
    후조오 출입국관리사무실에 다녀왔다.
    한국에서는 사본으로도 가능한 일들이 여기서는 어림도 없다.
    중국은행에서는 원본서류가 아니면 입금도 할 수 없다.
    한가지 비자관련 모르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수확이다.
    왜 여권과 비자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나 교육울 해주지않는지 현지에서 느끼는 황당함이 커다.
    상해에 공부때문에 와있는 조카를 만나 상해 한국곰탕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안에는 전부 한국손님들로 가득해서 북경왕징에 있을 때의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오랫만에 김치를 보니 반가워서 김치로 배를 채울만큼 실컷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한국상품을 파는 마트에 들러서 김치와 기타 식품들을 샀다.
    상해와서 8개월째인 조카의 중국어회화가 제법이라 대견하다.

    중국에서 사업의 첫번째 조건은 언어다.
    통역에 의지해서 하는 사업은 위험이 커므로 언어소통이 제일 관건이다.

    두번째는 많은 자금을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
    언제던 손을 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세번째는 확실한 아이템과 경험 즉 노하우를 갖고 시작해야 승산이 있다.
    중국측이 투자하도록 해서 50대 50의 지분으로 합작형태로 시작하면 아주 좋다.
    기술과 판매처까지 갖추고 시작한다면 언제까지나 칼자루를 이쪽에서 쥐고 있을 수 있으므로 안전하게 사업할 수 있다. 바로 지금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시작하면 아주 좋다.

    네번째는 중국전체를 시장으로 욕심부려서는 위험하다.
    처음에는 각 성이나 내륙지방의 문화와 생활 관습들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상해나 대련 북경 광주등의 문화와 관습등을 파악한 후 한곳에 집중적인 마케팅을 하여 성공을 해야 전국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
    중국전체 시장에 대한 욕심을 부리면 망가지기 쉬운 곳이 바로 중국이다.

    어제 밤부터 비가 오더니 하루종일 비가 오신다.
    이제 비 그치면 추워질 모양이다.
    그저께부터 정호승시인의 산문집을 읽는 중이다.
    마음에 와닿는 글들이 많지만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를 좁히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사업이 안정되면 다시한번 더 정독해야겠다.

    미국수출용 낫도포장지 디자인초안에
    심플해서 괜찮다고 피회장의 답신이 왔다.
    FDA승인을 받기위한 구비서류와 제품을 준비해야 한다.
    폐수처리시설 확장공사가 아직 한달정도 더 지나야 완공될 예정이어서 허가가 날려면 한 두달이 더 걸릴 예정이다.
    한국에서라면 두달도 안 걸릴 일들이 여기서는 하세월이다.
    무슨 낫도공장하나 허가받는데 4달, 5달이 걸리는지 원...
    아무리 만만디의 중국이라지만 시간이 돈인 요즘 세상에 성질급한 사람들은 속터질 일이다.
    더구나 1월에는 춘절이 들어있어 보름동안은 만사휴의.
    온 나라가 축포를 터트리며 보름동안 난리 굿을 하며 보낸다.
    3년 전에 축포를 터트리다 북경시내 방송국빌딩에 화재가 나서 고가의 방송장비들을 몽땅태우고 건물전체가 뼈대만 남은 황당한 사고도 춘절동안에 지랄굿을 하다 일어난 일이다.
    아무튼 며칠후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한 두달 차분히 기다리다 다시 올 계획이다.
    이제 급한 일은 없으므로 다시와서 공장가동하여 제품생산을 시작하면 된다.
    누군가 값싼 중국제품을 한국에 대량으로 들여와서 박리다매할 계획이 없느냐고 물어왔다.
    신토불이가 강한 한국에서 중국콩으로 만든 낫도를 판매하는 것보다 한국콩으로 만든 낫도를 지금의 절반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미국수출이 궤도에 오르면 내수는 2천년 역사를 가진 중국의 전통발효식품인 '豆豉'대량생산으로 공략할 예정이다.
    이제 중국대륙에서 '豆豉'신화를 만들어낼 교두보를 만들었다.
    여기 한 바가지의 마중물로 3년이면 충분하다.

    - 이익이 없는 싸움은 해서는 안되며,
    이익을 위한 싸움은 반드시 이기게 되어있는 싸움을 해야 한다.
    不戰以勝. 손자병법이 가르치는 지혜다.

    -借鸡下蛋
    jiē jī xià dàn


    우여곡절끝에 초반이 끝났다.
    초반은 실리위주의 일관성있는 작전으로 어려운 중공식포석에 맞서 잘 싸웠다.
    초반의 포석이 대세를 잃지 않고 안정감있게 잘 짜여졌으므로 이 싸움은 이기게 되어있는 싸움이다.
    중반전에서는 발빠른 행마로 상대를 교란하여 맥을 짚어 나갈 것이다.
    반드시 이기게 되어있는 판이다.
    실력과 함께 운이 따라주어서 저절로 이기게 되어있는 싸움.
    不戰以勝-손자병법의 핵심이다.
    이제 이 싸움이 미국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인도를 정벌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2011,12,3 浙江省 후조우에서 福如海 -2011,12,4일 일시귀국.

    2012년 1월 2일~6일 임진년 새해 -
    사람이 머리속에 든 별다른 전문지식이 많이 없어도 여러나라의 언어를 할 수 있다면
    21세기 글로벌시대의 여러분야에서 나름대로 능력을 발휘하며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미 중국에서는 초등교육과정에 영어를 필수의무과목으로 교육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영어와 중국어를 초등학교 의무과정으로 교육해야 할 것이다.
    나이 20-40대에 영어와 중국어를 한다면 어떤 분야에서도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흑룡강성 북대황집단 8510농장에서 당위서기와 상무국부국장등 고위 간부 몇명이 한국을 다녀갔다.
    열하루간의 일정을 한국의 모모씨가 안내를 맡아 접대했다.
    통역을 구사장의 아들이 했다.
    안내를 맡았던 모모씨와 2012,1,2일 용산역에서 8510부대농장 콩사업문제로 만났다.
    미국국적을 갖고 있는 모모씨는 12,1,4일 할빈으로 초청받아 일주간 일정으로 흑룡강성으로 안내받아 8510농장과 농장작물 해외판매 전권위임계약을 하고 1월10일 귀국한다.
    경비행기로 씨앗을 뿌리는 광활한 흑룡강성의 8510부대농장.
    그 농장의 콩을 가공해서 판매하는 사업에 모모씨가 전도사역할을 맡기로 했다.
    한국에서 교수로 TV방송 아나운서로 활동한바 있는 미모의 모모씨.
    재중 한인회회장이 모모씨가 속한 조직의 고문이며 국제유기농 심의위원이기도 한 모모씨. 글로벌 마당발이다.


    만.만.디!
    먼지가 쌓여 태산을 이루듯
    천천히 천천히 서두르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끝없는 만리장성을 쌓은 만만디의 나라.

    "만만치 않을 거야, 가면 다 망해서 온다더라.
    그런데다 왜 돈을 처넣는거야?"

    "그것은 아직 아이디어일 뿐이야, 안전한 곳에 투자하는거지,
    사람들 마음이 다 똑같은 거야"
    창의성을 무시하는 천편일률적인 반응속에 돈키호테가 되어 날아간 중국대륙.

    ~~~~~~~~~~~~~~~~~~~~~~~~~~~~~~~~~~~~~~~~~~~~~~~~~~~~~~~~~~~~~~~~~~~~~~~

    *<중국에서 네꿈을 펼쳐라> 저자 중국재중한인회 상근부회장님의 조언-
    (실례지만 메일 내용을 올리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주 좋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 진출초기에는 투자자금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전략으로 접근하신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대량발효기술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고 계신다니 안심이 됩니다.
    중국진출시 중요한 사항 중 2가지가 있는데
    1) 진출 지역
    2)사업파트너입니다.
    반드시 2-3번............ 10번 확인하고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북경을 여행하시는 길이 있으시면 제게 한번 들러 가시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011.6.13
    중국에서 조평규

    China Yanda Group
    vice-president / Pyung-Kyu,Cho
    Tel: 010)8084 - 12xx EXIT :80xx
    DIR: 010)8084-12xx
    web site : http://www.yandaco.com

    ~~~~~~~~~~~~~~~~~~~~~~~~~~~~~~~~~~~~~~~~~~~~~~~~~~~~~~~~~~~~~~~~~~~~~~~

    ●"생각을 바꾸라!" "Think Different!"
    ● Stay hungry, stay foolish.
    ● The journey is the reward.
    도전에 관해 - 여정은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이지만, 그 자체로 보상이다.
    애플사의 창업주 Steve Jobs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흔히들 성공이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는 생각들을 한다.
    일반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성공하기 위해 일을 하는 과정이 돈이라는 결과보다 더 소중한 보상이라고
    스티브잡스가 말했다.


    < M E M O >
    ● 미국 피회장께서 Lrrevocable L/C at sight로 Open 해주겠다는 고마운 소식.
    ● 3월10일경 피회장 한국방문예정.

    2012,1,9 福如海


    2012,3,15
    김포발 China Air 12시발 홍차오공항 2시 도착.
    청도에서 미리 도착한 일행과 만나 회사차로 후조오로 왔다.
    춘삼월이라 만만하게 생각했던 날씨가 아직 한 겨울이다.
    이건 북경이나 청도쪽 북방의 겨울날씨와는 질이 다른 차가운 기온이다.
    남방사람들의 차가운 인심을 기후에서 만난다.

    3월 20일
    공장 완성후 첫 작업.
    압력솥의 용량이 생각보다 적고 자동이 아니어서 조금 불편한 것 외엔 그런대로 괜찮다. 어차피 여긴 마중물이니까 완벽한 설비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

    3월 22일
    공장과 가까운 허브에 회사지원으로 방 2개짜리 아파트를 임차했다.
    월 850원. 우리 돈으로 15만원이다.
    회사 3층의 숙소는 청도에서 온 공장장에게 물려주고 그런대로 깨끗한 아파트를 하나 얻었다.
    여기 아파트는 한국처럼 바닥 보일러 파이프가 들어있지 않아 히터겸용 에어컨과 전자장판이나 전열기구로 난방을 한다.
    한국의 파이프가 깔린 보일러 난방이 얼매나 좋은지는 여기서 살아보면 안다.
    우찌됐던 사무실을 개조한 외풍 센 방보다는 훨 살만하다.
    임대주택이 거의 없는 곳인데 운이 좋았다.
    여기서 제일 불편은 한국에서 매일 차를 가지고 다니다가 차가 없으니 발이 묶여 멀리 가기가 어려운 점이다.
    차를 하나 살려고 계획중인데 일단 수출부터 차질없이 한 후에 살 계획이라 몇달 뒤로 유보해 놓았다.
    면허는 북경운전면허라 중국전역에서 운전해도 되니 염려없다.
    회사까지 전기스쿠터로 10분 거리라 우선은 회사지원금으로 3,500위안짜리 전기스쿠터 한대를 샀다.

    오늘은 춥고 황사가 심하다.


    12,4,28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중국에 왔으면 중국의 룰에 맞춰야 한다.
    여러가지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중이다.
    우선 미국시장에서 판매할 제품개발 문제로 고심중이다.
    제조단가와 판매가격, 수량은 1.5oz(42.5g) 포장으로 예정했다.
    휴대하기가 간편하고 보기도 괜찮다.
    동결건조한 알갱이 그대로 검정콩이라 집어먹기도 괜찮고 상품성이 있어 마켓 판매가도 2$정도면 부담없고 잘 팔릴 것 같다.
    {FILE:5}
    (인도네시아와 인도에서는 '템페'와 '스자체'라는 발효가 덜된 자연건조한 콩을 전통식품으로 먹고 있다)
    *소량판매라 시간이 많이 걸려 1파운드 지퍼백 파우더가 판매에 용이하다는 결론.


    문제는 껍질에 당분이 많은 대두나, 표면적이 큰 작은 노랑콩과 달라서 아미노산 수치가 낮다. 아미노산수치가 높아지면 맛이 쓰지므로 검정콩으로 제조한다.
    중국의 낫도국가표준이 아미노산수치 0.7이다. 여기에 맞춰야 수출이 가능하다.
    아니면 검정콩에 대해서 새로운 표준치를 하나 만들어야 한다.
    회사 질량관리부의 최부장이 무조건 아미노산수치 0.7이 나오도록 제조해 달라고 요청한다.
    멍청한 놈!
    아미노산수치가 0.4가 나온 검정콩낫도를 다시 발효실에 놔두면 발효가 진행되어 아미노산수치가 자연히 높아지게 되는 것을 낫도국가표준이라고 하니 황당하다.
    하기사 발효라는게 콩의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시키는 일이고, 일본의 낫도들 대부분이 조그만 콩나물콩으로 발효를 시켜 분말로 제조하면 아미노산수치가 0.7이상이 나오는데, 맛이 쓰므로 간장소스와 겨자유등을 첨가해서 먹는 것이다.
    한국의 검정쥐눈이콩을 잘쪄서 발효시킨후 건조시켜 가루로 만들면 아미노산수치가 0.7이상 나온다.
    검정콩은 껍질에 당분함유량이 높은 대두보다 콩이 작아야, 균들의 먹이가 되는 당분이 함유되어 있는 껍질의 표면적이 커서 점질물이 많고 발효상태가 좋은 이 점이 있다.
    큰 검정콩은 표면적이, 작은 콩보다 적을 뿐 아니라 수출상품용으로 조금 단단하게 쪄서 발효시킨 탓에 아미노산수치가 0.4로 나와 흰콩낫도에 대한 국가낫도표준 아미노산치에 미달된 것이다.
    최부장의 요구에 검정콩을 푹쪄서 과발효를 시켜 건조시킨 가루를 시험실로 보냈더니 오후에 아미노산수치 0.8로 결과가 나왔다고 시험실 근무자가 알려왔다.
    문제는 이 수치를 기준으로 시에 허가를 신청하게 되면 수출물량에 대한 검정콩 표준수치가 0.7이 되고 만다. 그러면 과발효상태의 맛이 쓴 제품을 제조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검정콩에 대한 새로운 표준치를 신청해서 아미노산수치 0.3를 기본수치로 하는 표준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샘플을 제출하고 심사허가가 나올 때 까지 또 하세월이다.

    중국의 룰! 산이 높아도 황당하게 높다.

    5,13
    공장에 청신호가 켜졌다.
    부총경리로 영업을 맡고 있는 손부총리가 대리상 2명을 데리고 와서 시식을 시켰다.
    모두 흡족한 상태에서 돌아갔다.
    중국내수시장이 커지고 있으므로 발빠르게 움직인다.
    반면 미국 수출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수출용으로 내는 단가가 너무 이익이 적어 불만이 커다.
    중국내의 세무관계에 미숙해서 세금부담도 커다.
    손부총경리가 국내 대리상에 낫도파우더 1키로를 시중의 절반가격에만 공급해도 수출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이 세이브되고 마진도 커므로 국내내수가 자리잡히면 이쪽이 수익면에서 수익이 더 커다.
    아무래도 손부총경리가 일을 낼 것 같다.
    영업이 전문이니 시장을 보는 눈도 빠르다.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다.

    12,5,21
    몽골의 광산일을 보고 한국에 들린 피회장에게서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미국시장을 잠식할 수 있겠다는 답신이 왔다.
    그러나 중국의 검정콩낫도 국가표준 아미노산규정이 없어 난감한 상황이다.
    중국에서 새로운 규정을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한 일이다.
    일단 중국의 대두낫도국가표준규정에 맞춰서 알갱이가 작은노란콩으로 제조하는 것이 제조허가를 빨리 받는 최선의 방법이다.
    다음날 동사장이하 회사간부들과 1시간여 갑론을박 끝에 작은노란콩으로 국가낫도표준규정 아미노산수치에 맞춰서 제조하되 丸제조기를 설치해서 丸으로 재가공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노란콩으로 제조하면 맛이 쓰지므로 환으로 재가공하는 것이 먹기에 편리하고,
    미국 수출 뿐만 아니라 중국내의 약국마케팅이나 홈쇼핑이나 소림식품회사에 공급상품으로 차라리 丸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유리하다.
    일본, 미국, 한국에도 없는 낫도국가표준규정이라는게 중국에 있다.
    검정콩낫도국가표준규정이 없어서 검정콩으로 만든 낫도를 수출을 못한다니......

    콩을 발효시키는 균(낫도균=고초간균=청국장균=막대균=바실러스균)들이 콩의 껍질속 당분을 먹이로 하여 번식하고, 그 균들이 배설해내는 물질들이 풍부하고 활성도가 큰 상태를 잘 발효된 낫도라고 하여, 일본에서는 해마다 하루 낫도의 날을 정하여 점성물질이 풍부하고 끈기가 강한 낫도를 선발하여 농산부장관상을 수여하고 있다.
    아미노산수치란 콩이 발효가 되어 단백질이 잘게 쪼개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인데, 점성물질이 많이 생성되지 않은 상태라 하더라도 과발효상태가 되면 암모니아냄새가 강하게 나고 아미노산수치가 높아지게 된다.
    이런 상태는 맛이 쓰고 점질물이나 균들의 상태가 강한 활성상태가 아니므로 좋은 상태의 낫도라고 할 수가 없다.
    언젠가 한국의 TV방송에 모대학 식품과 교수가 냄새가 꼬리하게 많이나는 청국장이 일본의 낫도보다 효능이 좋은 식품이라고 웃지 못할 황당한 말을 하는 걸 보았는데, 여기 중국에서는 관리들이 학자들과 한 술 더 떠서 낫도의 원조국답게 일본, 미국, 한국에도 없는 낫도국가표준규정이라는 걸 정해 놓았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중국, 정말 여러가지로 머리에 지진나게 만드는 나라다.

    6.5일
    품질관리부의 최부장이 요구하는대로 흰콩으로 만든 낫도가 아미노산수치가 1.1이 나왔다고 시험실에서 알려왔다. 국가낫도표준치 0.7보다 엄청나게 높은 수치가 나왔다.
    아미노산수치 높히는 것은 그냥 발효가 더 진행되도록 놔두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낫도의 진이 약해지고 맛이 쓰지는 상태를 국가표준이라니...낫도가 뭔지도 모르는 이들이 만든 규정이니 기가 막힐 수 밖에..
    그러나 정작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이 곳 후조오의 기후조건이 고온다습하여 낫도생산에 적합하지않는다는 점이다.
    5,6,7,8 월의 기후에는 영락없이 곰팡이가 발생한다.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내의 공기정화시설이 필수요건이며 생산후의 보관도 문제가 있다. 자칫하면 제품에서 아플라톡신이 기준치를 초과하여 제품전체를 폐기시켜야하는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 곳 기후조건이 생소한 탓에 간과한 것이 결정적인 문제가 되었다.
    자연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덤벼든 초반은 의외의 함정에 빠져 철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이 된 것이다.
    또 한가지는 시간이 일년이나 걸린 점이다.
    전쟁터에 출정하여 일년이나 소비하였다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은 전쟁이다.
    이곳 절강성의 식품허가규정이 다른 성보다 까다롭고 또 합작파트너의 기민한 뒷공작이 부족한 탓에 시간이 돈인 세상에 낫도생산공장허가를 받기까지 일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하게 된 뼈아픈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랬던가?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난제에 부딪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숭산 소림사에서 긍정적인 일차 답변이 왔다.
    이제 현지에서 생산하여 공급만 하면 술술 풀릴 일로 확신이 섰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 재일교포사업가로부터 길림성 도문시에서 같이 낫도제조사업을 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사업자금을 지원해 주겠다는 파트너가 새로 생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타인의 도움이 크게 필요치 않다.

    중국사업은 숭산 소림으로 단독 출정하여 승부를 낼 예정이다.
    타인의 도움없이 심장부로 치고 들어가서 속전속결로 승부를 내는 것이 허비한 시간을 만회하는 최선책이다.

    가자! 숭산 소림사로!!

    8,22일 -가든호텔 5시, 재일교포 이성사회장 1차 미팅후
    낫도 합작사업은 새해부터 천천히 하기로 하고
    그동안 소요한 시간을 벌충하기 위해 숭산 소림으로 간단한 제조장비를 가지고 출정하기로 한다.

    2012,
    8,21 -kal pm 6시40분발 귀국
    8,22 -1차 미팅, 재일교포 이성사회장/가든호텔 5시
    8,23 -미팅. 미국 피회장/구로호텔/2시30분. 임영웅씨와 함께
    점심식사하고 워커힐 쉐라톤 불가마에서 찜질하며 대화.
    자필 서명한 낫도주문서 받음.
    8,24 -11시 KTX로 목포내려 옴.

    9,8. -2차 미팅예정,이성사회장, 가든호텔 12시
    --->합작사업협의는 2013년으로 미루기로 함.

    9,9 상경,
    9,10 - 출국 12시 김포공항-홍차오도착-후조도착
    9,12 - 상해출발-정주시 도착후 일박
    9,13 - 등평시 도착 후 1박
    9,14 - 정주시 도착 소림사사업본부방문, 아파트임차후 1박
    9,15 - 상해도착후 1박
    9,16 - 후조오도착.

    9,20 - 정주시 기차표예매
    9,25 - 우체국에서 이사짐 택배
    9,26 - 정주시로 오후 6시 기차로 출발
    9.27 - 오전 8시30분 정주도착.


    새 술은 새 부대에!
    가자! 崇山 少林으로!

    길없는 홍해를 향해 모세가 믿음으로 나아 갔듯이!
    无盐豆豉不敗! Good Luck!



    纳豆源于中国。纳豆类似中国的发酵豆、怪味豆。古书(和汉三才图会)记载有:
    “纳豆自中国秦汉以来开始制作。
    "纳豆初始于中国的豆豉"。据《食品文化·新鲜市场》(石毛直道著,第101页)一书介绍,


    * 14억 중국인이 미처 생각지 못한 전통식품의 부활이라는 아이템과 비어있는 시장,
    반드시 이기게 되어있는, 해 볼만한, 정말 흥미진진한 전쟁이 앞에 있다.
    앞으로 하남성 등펑시 崇山 少林에서의 대반전 中盤戰과 중국시장을 정벌하는 정벌기가 시작된다.

    남이 하지 않은 일. 아무도 가지 않은 길.
    돈키호테처럼 깃발을 들고 혼자서 가는 일이 외롭지만 두렵지 않다.
    내가 나를 믿는 신념과 열정이 있으므로. 또 하나님의 뜻이 계시므로.


    2012,9,30 추석 -하남성 정주시에서 福如海



    10,20
    세상에서 제일 작지만 가장 큰 无盐豆豉 제조작업장이 하남성 정주시 소림사 코앞에 완성되었다.
    오늘 검정콩 5kg으로 첫 작업을 했다.
    얼마 전에 낫도를 소림사와 컨텍하자는 낫도제조회사의 제의를 거절한 소림사.
    지금 소림사는 맥도날드 햄버거나 코카콜라처럼 중국을 대표할 식품을 찾고 있는데 일본식 식품문화를 소림사에 접목시킬려고한 발상이 어처구니 없다.

    이제 중국 2,000년 역사를 가진 전통발효식품인 豆豉를 업그레이드 시킨 无盐豆豉를 소림사 사무처에 전달할 것이다.
    앞으로 중국에서 업그레이드 시킨 无盐豆豉를 일상 건강식품으로 먹게 될 것이므로 이 시작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둘지 않고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崇山을 오른다.

    10,26 금요일
    소림사사무처에 잘 발효시킨 검정콩'无盐豆豉'한 박스와 관련 서류를 갖다주고 왔다.
    '왕옌'사무처 담당이 외근중이라서 간단한 전화 통화만 하고 왔다.
    마침 소림문화책임자가 외국외유에서 돌아와 회의중이라 타이밍을 잘 맞췄다.
    다음 주에 작은 콩으로 만들어 다시 가기로 '왕옌'과 통화후 돌아와서 몇일 전에 개장한 '완다'백화점에서 생활용품 쇼핑을 했다.
    중국산이 불량품이 많은데 비해 백화점 판매상품들은 대체적으로 품질면에서 많이 개선된 느낌이다.
    가격도 한국의 백화점수준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일반 서민들은 백화점 근처에도 못 가볼 정도의 가격대인데도 불구하고 매장안은 쇼핑객들로 넘친다.
    빈부의 격차를 이 곳 완다백화점에서 다시 한번 실감한다.

    11월 초 프랑스외유를 마치고 돌아오는 소림사방장과 함께 소림사를 첫 시작으로 '无盐豆豉'는 중국이 세계에 자랑할 중국전통발효식품으로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FILE:13}

    12,11,18
    예상했던 대로 소림사방장으로 부터 공급 요청이 왔다.
    달마대사 탄진 49일 대법회에 참석중인 200여명의 전국 사찰 주지들에게 매일 1식으로 공급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일단 주 3회씩 공급하기로 협의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거야!! 소림사를 뚫다니!!]

    이제 '无盐豆豉'는 소림사로 부터 시동이 걸렸다.
    소림사문화센터가 세계 30여개 국가에 포진되어 있으므로 전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12,11,21 수요일
    오늘은 2,000년 역사의 중국전통발효식품인 '无盐豆豉'가 중국에서 정식으로 부활하는 기념해야할 날이다.

    200명분의 '无盐豆豉'를 소림사에서 차를 보내 pm:6시에 실어갔다.
    전국 사찰에서 초청받아온 200여명의 주지들에게 pm:7시 30분 저녁식사시간에 제공된다.

     {FILE:14}

    방장은 며칠간 대법회에 참석하고는 다시 외국으로 나갔다.
    마치 이 일을 위해 잠시 귀국한 느낌이다.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다.
    소림사방장을 만나려면 두 세달을 기다려도 만날까 말까 한 인물인데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정말 신비하다.
    될 일은 어째도 된다더니 대박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 이른 시각에 소림사 주방 방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좋은 식품을 제공해 주어서 고맙다며 소림사에서 만나길 청해 왔다.

    이제 불이 붙기 시작한다.
    앞으로 소림사 일일 5만명의 관광객들에게 문화상품으로의 판매와 전국 사찰 신도들에게 판매가 가능해 졌다.
    왕옌이 관리하는 전국 각 성단위 소림식품개발회사의 로반들에게 공급하여 전국 백화점에서의 판매, 또
    등펑시 소림사아래 소림무승원 10만명의 수련생들에게 일상식으로 공급이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세계 30개국에도 '无盐豆豉'가 소림사 문화전파의 첨병역활을 하게 될 것이다.


    '无盐豆豉'不敗! Good Luck!



    [소림사 입구]
    {FILE:11}

    [소림사방장집무실]
    {FILE:6}

    [소림사관광객들]
    {FILE:7}

    12,11,26
    오늘 pm3:00 에 소림사 차가 와서 无盐豆豉 200명 분을 실어갔다.

    소림사에서 보내 준 SUV차로 200여명의 주지들에게 멕일 '无盐豆豉'를 싣고 소림사로 고고싱~~~
    VIP대우를 받으며 소림사경내를 둘러보다.


    {FILE:9}

    {FILE:8}

    {FILE:10}

    12,12,3
    발효시킨 검정콩 无盐豆豉를 섭씨 55도 12시간 저온건조 시켰더니 냄새도 별로 없고 아주 훌륭히 건조되었다.
    분쇄해 보니 구수하기까지 하다.
    각 성의 소림식품회사에 공급해서 백화점등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추후 전세계 30개국에 중국을 대표할 전통발효식품으로 공급이 될 것이다.

    -하남성 정주시에서 福如海
    http://blog.naver.com/natto114


    잘나가는 ‘주식회사 소림사’

    무술 공연·브랜드 마케팅·제약·식품업 등 수익 사업으로 수입만 1000억원대 넘어서
    스융신 방장 주도로 해외 진출 등 사세 날로 확장…
    최근 열린 쿵푸스타 대회에서도 6억원 벌어

    ▲ 지난 3월 소림사를 찾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승려들의 무술을 구경하고 있다.
    소림(少林), 무당(武當), 아미(峨嵋), 태극(太極), 형의(形意), 팔극(八極), 팔괘(八卦), 천계곤(天啓棍)…. 중국 허난(河南)성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중국 무림의 12개 문파에서 온 장문인과 대표들이 모였다. 고대 무협소설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9월 9일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날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36명의 쿵푸 수련생은 9일간의 ‘폐관수련(閉關修練·사찰의 문을 걸어 잠그거나 동굴 등에 틀어박혀 하는 수련)’을 마치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중국 6개 도시와 미국·러시아·프랑스·이탈리아·독일·호주 등 6개국에서 예선을 거쳐 선발된 쿵푸 고수들. 소림사가 광둥(廣東)성 선전 위성텔레비전방송국과 손잡고 진행하는 ‘중국 쿵푸스타 세계TV대회(中國工夫之星全球電視大賽)’에 참가한 선수들이다.

    지난 3월 말부터 시작된 이 대회에는 세계 40여개국에서 수천 명의 쿵푸 선수들이 예선에 참가했다. 지역 예선을 뚫고 본선에 오른 36명은 소림사 폐관수련 기간 동안 ‘역근경(易筋經)’과 ‘세수경(洗髓經)’ 등 소림사 비전 무술도 배웠다.

    대회는 무술대결로 승부를 가리지 않는다. 겨루지만 다투지 않는 ‘쟁이불투(爭而不鬪)’ 방식으로 대회를 진행한다. ‘쟁이불투’의 대회 방식은 이유가 있다. 무조건 쿵푸 실력이 최고인 고수를 뽑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회 우승자는 소림사가 직접 제작하는 TV 드라마 ‘소림사 승병 이야기’와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할 ‘신소림사’에 캐스팅될 예정이다. 쿵푸 실력 못지 않게 시청자와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준수한 외모와 개성 등 스타성이 중요한 것이다. 소림사는 ‘신소림사’ 영화에 1억5000만위안(약 180억원)을 투자할 뿐 아니라 해외로부터도 투자를 유치해 블록버스터급 영화로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 6개월간 진행된 대회는 흥행 면에서 대성공이다. 36명의 폐관수련 모습은 미국 CNN과 일본의 NHK 등 세계적인 TV채널이 방송하면서 해외 흥행에도 큰 성과를 올렸다. 게다가 선전 위성TV가 앞으로 최종 우승자를 결정하는 과정을 리얼리티쇼 방식으로 방송할 예정이어서 본격적인 흥행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소림사가 이 행사에 지출한 비용은 1500만위안(약 18억원). 그러나 아직 결승전을 마치기도 전에 벌어들인 수입이 2000만위안(약 24억원)을 넘어섰다. 결승전은 TV 리얼리티쇼로 진행하면서 시청자들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투표를 통해 우승자 선발에 참여시킬 계획이다. TV 리얼리티쇼 광고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수입까지 포함할 경우 대회 수입은 훨씬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짭짤한 수익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한 주체는 ‘소림사 문화전파 주식회사’. 소림사가 전액 출자한 회사다. 이 회사는 소림사 브랜드를 이용해 각종 문화 수익사업을 담당한다.

    소림사는 이 회사뿐 아니라 산하에 식품·제약·브랜드관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모두 6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1998년 무승단(武僧團)의 무술공연을 담당하는 ‘소림사 실업발전 주식회사’를 처음 발족한 데 이어 채식주의자를 겨냥해서 소림사 선식을 제품화하는 식품회사, 선차(禪茶)회사, 소림약국을 잇따라 세웠다. ‘소림사’ 브랜드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브랜드 관리 회사도 별도로 만들었다. 소림사는 여러 개의 자회사를 문어발처럼 거느린 지주회사인 셈이다.

    소림사는 브랜드 관리 자회사를 통해 이미 29개 분야에 100여개의 ‘소림사’ 상표권을 갖고 있다. 자회사들은 이런 ‘소림사’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마케팅에 나선다. 예컨대 소림약국은 소설가 진융(金庸)의 소설에 나오는 ‘환혼탕(環魂湯·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약)’과 소설 속의 상처치료 명약인 ‘금강대력환(金剛大力丸)’ 등을 상품화할 계획이다. 현재 인터넷을 통해 시험적으로 자체 제작한 약을 팔고 있는 소림약국은 “수백 년간 전해 내려온 소림사 ‘비방(秘方)’으로 약을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소림사의 수입 규모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수천억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관광객으로부터 벌어들이는 수입만 해도 만만찮다. 소림사가 위치한 덩펑(登封)시의 5개 유명 관광지가 지난해 벌어들인 관광수입은 12억위안(약 1440억원). 그 중에서 절반인 6억위안(약 720억원)이 소림사와 관련된 수입으로 나타났다.

    덩펑시 정부는 지난 8월 소림사가 시 관광수익 증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소림사 방장인 스융신(釋永信) 스님에게 1억원이 넘는 폴크스바겐 SUB 차량을 제공했을 정도이다. 여기에다 자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입까지 감안하면 소림사 전체 수입 규모는 1000억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소림사는 중국 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인 ‘저우추취(走出去·해외 진출)’ 전략을 추진한다. 1988년 프랑스 파리시의 초청을 받아 처음으로 스님을 파견, 해외 마케팅에 나섰다. 해외 마케팅의 선봉 역할은 ‘소림 무승단(武僧團)’이 맡는다.

    무승단은 1988년부터 해외공연을 시작해 지금까지 60여개국서 무술공연을 펼쳤다. 소림무승단은 해외 1회 공연 때마다 1만달러 가량을 벌어들였으나 최근에는 소림 무승단을 본뜬 ‘가짜 무승단’들의 공연이 많아 5000달러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미국·영국·독일 등 세계 10개국에는 소림사 문화센터를 두고 있으며 20여개국에는 소림사 무승을 상주시켜 소림무술과 소림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소림사는 지난 8월 호주에 12만㎢ 규모의 땅을 매입했는데 이곳에 대형 소림무술문화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공산화 이후 은둔의 사찰로 남아있던 소림사가 최고의 경영실적을 올리는 ‘주식회사 소림사’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CEO 스융신(釋永信·41) 방장이 있기 때문이다. 소림사 자회사 설립과 각종 수익 사업은 대부분 그가 소림사 주지와 방장을 맡고 난 뒤 주도한 것이다.

    소림사는 1980년대 초만 해도 10여명의 스님이 28마지기 땅에 의존해 근근이 생활하는 무너져가는 사찰이었다. 스융신 방장은 16세이던 1981년 소림사로 출가해 6년 뒤인 1987년 주지를 맡았다. 그가 주지를 맡았을 때는 여건도 좋았다. 1982년 ‘소림사’라는 영화가 개봉된 이후로 잊혀져 가던 소림사와 소림사 무술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본격적인 소림사 ‘경영’에 나섰다. 해외에 소림사 승려들을 파견한 것은 물론이고 무승단을 조직해 소림사를 찾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무술공연을 펼쳤다.

    선진 경영기법 도입에도 적극적이었다. 중국에서 인터넷 보급이 거의 초보 단계이던 1996년 심산고찰이던 소림사의 홈페이지를 직접 개설했다. 그는 “홍콩에서 사가지고 온 디지털카메라로 소림사 사진을 찍어서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한 끼 식사를 다 마치는 시간 동안 사진 한 장 올리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인터넷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었던 그 당시에 소림사 홈페이지를 개설한 이유에 대해 그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소림사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브랜드의 중요성을 일찍 깨닫고 ‘소림사’ 브랜드 관리 전문회사를 설립한 것도 남다른 경영감각이다. 이 회사를 통해 그는 ‘소림사’ 브랜드를 사용하던 독일과 일본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 승소한 적도 있다.

    그의 일과도 여느 주지나 방장과는 다르다. 새벽에 일어나 경을 외는 것까지는 일반적인 스님의 모습이지만 아침 식사 이후의 시간은 완벽한 CEO의 일과다. 중국 언론에 소개된 지난 8월 23일 그의 오후 일과를 보자. 한국과 프랑스에서 찾아온 손님을 맞았으며 덩펑시 국제여행사 사장과 관광사업 문제를 논의했다.

    이후 정저우(鄭州)시 문화국장, 칭화대(淸華大) 건축과 교수와 500만위안(약 6억원)을 들여 탑림(塔林ㆍ탑이 모여있는 지역)을 보수하는 문제를 의논한 뒤 어두워지자 다시 다른 손님을 만나러 시내 모처로 향했다.

    그는 CEO의 책무라고 할 수 있는 인재 양성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과거 소림사 승려 교육은 농사와 경전 학습에 그쳤으나 지금은 지리와 역사뿐 아니라 영어 교육까지 진행한다. 소림사의 세계화를 위해 일부 승려에게는 경영학석사(MBA) 교육까지 시키고 있다.

    소림사의 기업적인 성공에 대한 칭송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림사의 지나친 세속화·상업화에 비판적인 여론도 적지 않다. 덩펑시가 스융신 방장에게 1억원대 SUV 차량을 선물했을 때 네티즌이 “출가한 승려가 호화 차량에 욕심을 부린다”고 들끓었던 것은 ‘주식회사 소림사’에 대한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방증한다.

    평론가 왕다웨이(王大衛)는 “소림사의 상업적인 성취의 원천은 깨끗한 마음으로 수련·참선하며 무술을 익혀 몸을 단련하고 심령을 도야하는 선(禪)과 무(武)의 결합에서 온 것”이라고 말한 뒤 “그러나 최근 소림사의 현대적인 변화는 소림사의 근본마저 배반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소림사의 근본이 희미해지고 엔터테인먼트회사나 공연단체와 다를 바 없어진다면 ‘소림무술’이 무엇으로 외국인에게 어필하겠느냐는 지적이다.

    비판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스융신 방장의 신념은 확고하다. 그는 “‘현대 종교는 신앙이라는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미국 종교학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 “소림사는 마땅히 기업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면서 “사회에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생각을 견지해야만 더 잘 생존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물론 소림사의 기업 이념은 일반 기업과는 다르다. 스융신 방장은 “우리는 경영이라는 방식을 통해 소림문화를 전파하는 데 중점을 둔다”라고 말한다. 예컨대 채식 식품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소림 문화 전파의 일환으로 설명한다. 맥도날드·코카콜라가 미국 문화의 첨병 역할을 하듯 소림사 선식으로 소림문화를 전파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주식회사 소림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에 대해 “실질적인 일을 해본 사람만이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독경과 참선수행이 아닌 실사구시적인 사업으로 중생 속으로 뛰어든 소림사를 대변한 말이다. 그래서 ‘주식회사 소림사’는 사회주의 이념은 점점 퇴색해가고 ‘샹첸저우(向錢走·돈을 향해 나아간다)’에 혈안이 돼 있는 중국식 자본주의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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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목록

    성공기원님의 댓글

    성공기원 작성일

    안녕하십니까? 오래 간만입니다.
    중국에서 사업는 잘되어 가고있고
    그리고 제품은 언제쯤 생산되는지요?
    중국에서 큰성공을 기원합니다.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격려말씀 감사합니다.
    잘되어가고 있고 잘될 것입니다.
    중국전통발효식품을 업그레이드해서 중국인들이 일상 건강식으로 먹도록 만들 예정입니다.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피회장님 메일]
    보낸사람 : krpro21 12.11.19 23:05
    보낸날짜 : 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23시 05분 42초 +0900


    여사장님!!!!

    참 대단하십니다.
    그 힘든 중국 시장을 개척하고 계시니 저는 정말 작아지는 느낌이 드는군요. ㅋㅋ

    앞으로 승승장구하시길 늘 기도하겠습니다.

    여기는 복구가 거의 완료되어 생활은 완전히 정상을 찾았고 몇몇 지역만 주유소가 아직
    정상화가 안되어 기름 구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도입니다.

    저는 다음주에 잠시 키리기즈를 다녀올 예정이고, 계속 뉴욕에 있을겁니다.

    자주 연락하지요.

    피 0 0

    짐비연님의 댓글

    짐비연 작성일

    글을 읽어 보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소림사에 납품은 잘 하고 있겠지요
    미국에서도 큰 성공을 바랍니다.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감사합니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에서 제조해서 수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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