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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영후 작성일04-11-25 21:27 조회2,661회 댓글0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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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기형도


    가라, 어느덧 황혼이다

    살아 있음도 살아 있지 않음도 이제는 용서할 때

    구름이여, 지우다 만 어느 창백한 생애여

    서럽지 않구나 어차피 우린

    잠시 늦게 타다 푸시시 꺼질

    몇 점 노을이었다

    이제는 남은 햇빛 두어 폭마저

    밤의 굵은 타래에 참혹히 감겨들고

    곧 어둠 뒤편에선 스산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우리는 그리고 차가운 풀섶 위에

    맑은 눈물 몇 잎을 뿌리면서 落下하리라

    그래도 바람은 불고 어둠 속에서

    밤이슬 몇 알을 낚고 있는 흰 꽃들의 흔들림!

    가라, 구름이여,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해

    이제는 어둠 속에서 빈 몸으로 일어서야 할 때

    그 후에 별이 지고 세상에 새벽이 뜨면

    아아,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우리는

    서로 등을 떠밀며 피어오르는 맑은 안개더미 속에 있다.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2


    슬프구나

    벌레 먹은 햇빛은 너무도 쇠잔하여

    마른 풀잎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이제 한 도막 볏짚만큼 짧은 가을도 숨죽여 지나가고

    적막한 벌판에 허수아비 하나 남아

    마른 수건처럼 쓸쓸한 가을 臨終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그리하여 앙상한 빈 들엔 時間이 가파르게 移動하고

    理致를 아는 바람의 무리만이

    생각난 듯 희뜩희뜩 떠다닐 것이다.

    곧 밤이 되리니 겹쳐 꾸는 꿈속에서

    암초에 걸린 맨발로

    핼쑥한 하얀 달 하나 떠오르고

    기진한 덩굴손 같은 달빛 몇 줄기로

    단단히 동여맨 가을의 시체를 끌고 이리저리 떠돌다

    새벽이면 세상 빈자리마다

    얼어붙은 땅을 쏘며 사라질 것이다.

    죽음이여, 그러나 언제 우리가

    너를 두려워했던 적이 있었던가

    常識으로 무장한 이 세상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이 어디 있으며 새롭게 消滅하는 것이

    무엇이냐. 오, 지폐처럼 흩날리는 우리의 생애 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는

    숱한 겨울과 싸워 이겨왔던 것이냐, 보아라

    畢生의 사랑을 껴안고 엉켜 쓰러지는 一年草의 아름다움이여.

    불어라, 바람아 우리가 가을을 잃은 部族으로 헤매이다

    바람아, 불어라 어느 시린 거리에서 풀썩이는 꽃처럼 쓰러져도

    힘차게 튕겨지는 씨앗의 형상으로

    우리는 堅固하게 되살아나

    불어라 바람아, 우리 몸이 가장 냉혹한 處形의 倉庫에 던져지고

    바람아 불어라, 우리 목숨이 식은 노을 퍼붓는 거리에서

    한 장 얼음으로 結縛될지라도

    아, 그러나 그 무엇이 다가와

    槍날같이 부릅뜬 우리의 눈빛을 거두겠는가

    죽었는가, 장엄한 우리여, 누가 우리를 죽음이라 부르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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